韓 독자제재에 보복 예고한 러…한러 경색 장기화 불가피

푸틴 방북까지 이어지면 더 악화 예상…북러 밀착과 대비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AFP=뉴스1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한국의 독자제재 조치에 러시아가 '보복'을 예고하며 한러관계의 악화가 장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3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북러 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 행보에 대응해 취한 독자제재 조치를 두고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칠 비우호적 조치"라고 말했다.

자하로바 대변인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대응이 뒤따를 것"이라고 강조하며 "러시아와 한국의 관계는 이미 미국 때문에 깊은 위기에 처해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일 러북 군수물자 운송 및 북한 해외노동자 송출을 통해 북핵·미사일 개발 자금 조달에 관여한 러시아 선박 2척과 기관 2곳, 개인 2명을 독자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정부는 이번 조치가 '대북 독자제재'라고 밝혔지만 러시아만을 대상으로 독자제재를 발표한 건 이번이 처음으로 사실상 '대러 독자제재' 조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러관계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침공한 지난 2022년 2월부터 삐걱거리는 상황이다. 그해 정부가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대(對)러시아 경제·금융제재에 동참하자, 러시아 측은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했다.

한러관계 악화의 원인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재래식 무기 등이 부족해진 러시아는 북한과의 불법 무기거래 등 군사협력을 도모하면서 한국과 더 거리가 멀어졌다.

특히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등 노골적인 안보리 결의 위반에도 '거부권'을 행사하며 대북제재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기도 하다.

최근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에게 러시아산 최고급 세단 '아우르스'를 선물하는 등 러시아는 유엔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무력화'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지난달엔 안보리 결의 이행을 감시하는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당시 표결에서 상임이사국 중 러시아만 유일하게 거부권을 행사했고 중국은 기권했다.

전문가 패널은 2009년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이후 설치돼 대북제재 결의 위반 의심 정황 등을 직접 조사해 매년 두 차례 심층 보고서를 발간해 왔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의 암묵적 대북 비호에도 불구하고 대북제재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 로이터=뉴스1

러시아의 이번 '선물'에 북한은 호응하듯 사의를 표했다. 러시아 타스 통신에 따르면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는 3일(현지시간) 기자들에게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북한 감싸기 행보가 점차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로선 미국 등 우방국을 중심으로 한 자체 감시행보 강화 등 '플랜B' 가동에 본격 힘을 싣는 모양새다.

정부는 지난달 말 북한의 핵·미사일 자원·자금줄 차단을 위한 한미 간 실무협의체인 '강화된 차단 TF(태스크포스)'를 처음으로 개최했으며, 향후 추가 독자제재 가능성도 열어뒀다. 또한 서방국과의 기존 대북제재 연계를 점검하고 협력도 추진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전 이후 크게 경색됐던 한러관계는 올 들어 잠시 개선 조짐이 보이기도 했다.

지난 2월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이 방한해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해 김홍균 외교부 1차관, 김건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정병원 차관보 등을 두루 만나면서다.

동시에 러시아는 주한러시아 대사 등을 통해 "한국이 비우호국 중 가장 우호적인 곳 중 하나"라는 메시지를 냈는데, 이는 러시아 나름의 관계 개선 의지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러시아 스스로가 계속해서 북한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각종 '선을 넘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내며 한러 사이의 경색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푸틴 대통령이 오는 5월 집권 5기 임기를 시작한 후 중국에 이어 북한을 찾을 것으로 예상돼 이 역시 경색 심화의 요인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