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세기 신라인처럼 우리가 3국 관계 앞장서야 [한중일 글로벌 삼국지]

중일, 상호 교류하면 장보고 도움 받아
'3국 국민 공동이익 증진 방안' 논의해야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전 한중일협력사무국(TCS) 사무차장).

(서울=뉴스1) 백범흠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초빙교수 = 일본 전국시대가 끝나가던 1575년 5월 '카이(야마나시현)의 호랑이'라고 불리던 다케다 신겐(池田信玄)의 아들 가쓰요리(勝賴)는 조총으로 무장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연합군과의 최후 일전을 위해 기병 위주 1만5000여 병력을 이끌고 최전선 나가시노로 진군했다.

가쓰요리는 일본의 패권을 결정한 나가시노 전투를 앞두고 다음과 같이 외쳤다. "다케다 가문은 시조 신라사부로(新羅三郞)이래 전투를 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신라사부로는 본명이 미나모토 요시미츠(源義光)로 11세기 교토 부근 시가현 오츠의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에서 성인식을 치른 후 이름을 바꿨다. 신라선신당은 '신라명신좌상(新羅明神坐像)'을 모신 사당이었다. 신라명신은 해상왕 장보고로 추측된다.

9세기경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는 뱃길에는 남로와 북로가 있었다. 남로는 오사카에서 출발하여 큰 섬들로 에워싸인 '세토나이카이(瀨戶內海)'를 나와 규슈 항구에서 중국 중남부로 직진하는 항로였다. 당시 항해술로 남로는 위험이 따르는 항로였다.

북로는 세토나이카이를 나와 규슈 항구에서 쓰시마를 지나 장보고 해상세력의 본거지인 청해진(완도)을 거쳐 서해를 타고 북진하다가 산둥반도로 서진하는 항로로 상대적으로 안전했다. 당나라를 왕래하는 많은 일본 승려들이나 상인들이 장보고의 동북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에 의지하여 종종 북로를 선택했다.

장보고 기념관 (완도군 제공)/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천태종 불교 등 당나라의 선진 학문을 배우기 위해 9세기 '견당(遣唐) 유학길'을 택했던 옌닌(圓仁)과 옌친(圓珍) 등 일본 학승(學僧)들은 귀국 후 일본-신라-당나라 사이 장거리 항해와 당나라에서의 유학 생활에 큰 도움을 준 장보고 등 신라인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당시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 인근 시가현 오츠의 온조지(寺) 경내에 신라명신좌상을 모신 신라선신당을 세웠다. 신라명신좌상과 신라선신당 모두 일본 국보로 지정돼 있다. 장보고의 흔적은 시가현 엔랴쿠지와 교토 적산선원에도 남아있다.

9세기 동북아시아 바다의 패권을 장악했던 장보고는 한중일 세 나라 간 교류와 협력에 크게 이바지했다. 장보고는 당나라와 발해는 물론 류큐, 타이완과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베트남 등 여러 나라들과도 활발히 교류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한중일 세 나라 간에는 전투나 전쟁보다는 교역과 문화교류 등 평화로운 시기가 훨씬 더 많았다.

한중일 3국협력사무국(TCS)은 지난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중국 광시성(廣西省) 당국과 함께 한중일(CJK) 3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ASEAN) 출신 청년들이 참가하는 '청년대사 프로그램(Young Ambassador Program)'을 광시성 수도 난닝(南寧)에서 개최했다.

한반도와 일본, 몽골 등 동북아시아에 못지않게 베트남과 타이,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도 중시하는 중국은 난닝을 아세안 진출 교두보로 발전시키고 있다. TCS는 3월 말에는 중국의 고도(古都) 시안에서 한중일 세 나라 출신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중일 3국어 말하기 대회(Speech Contest)' 결선을 개최할 예정이다.

피비린내 나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은 국제 교역에 매우 중요한 홍해의 아덴만 해로를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로 위협하고 있다.

ⓒ News1 DB

한반도와 대만해협도 이미 오래전 여차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불안정의 호(弧)'에 들어갔다. 한중일 관계에 불신의 먹구름은 걷히지 않고, 새로운 협력의 문은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매우 활발했던 한중 관계는 2015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국 배치 이후 2024년 현재까지 상호 불신과 의혹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정치·외교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사회 교류도 그다지 활발하지 못하다.

9세기 한중일 세 나라는 동중국해와 서해 바닷길을 통해 평화롭게 교역하고, 문화를 교류하며 외교사절을 주고받았다. 산둥성과 저장성 등 중국 해안에는 신라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사찰이 즐비했다. 신라인들은 일본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었다. 중국인과 일본인은 상호 교류하면서 장보고 등 신라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지금 미국을 제외한 세계 대다수 나라의 경제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한중일 3국은 미중 전략경쟁 포함 국제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TCS 설립정신을 되살려 3국 정상회의 재개 등 한중일 3국 협력 증진에 적극 나서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국가(Polis)의 목적은 무엇보다 '모든 시민의 공동이익(共同利益)'을 실현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한중일 세 나라는 그동안 쌓인 '상호 불신의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라도 3국 정상회의를 조속 재개해 '3국 국민의 공동이익 증진 방안'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9세기 신라인과 같이 우리나라가 한중일 3국 관계 개선과 강화에 앞장서야 한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