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축사서 한국 뺀 중국…한미일 균열 내기냐 한국 향한 '메시지'냐

전문가 "양국 당분간 소원할 것…'전략적 협력' 빠진 韓에 불신"

왕이 중국 외교부장.(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신년 축사에서 미국·일본 등은 언급하면서 한국에 대한 메시지만 배제했다. 이것이 한미일 3각 밀착에 대한 견제일 가능성과, 한국을 향한 '무언의 압박'이라는 분석이 동시에 제기된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부장은 지난달 31일 베이징 국가대극원에서 '2024년 신년 리셉션'을 개최하고 중국 주재 각국 외교사절과 국제기구 대표 등 400여명을 초청했다.

왕 부장은 이날 연설에서 "지난 1년 동안 '신냉전'은 모든 국가에서 광범위하게 반대했고 '디커플링'(공급망 등 분리)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입증됐다"라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대화와 협력을 견지하고 대국 간의 우호적 상호 작용의 주춧돌이 됐다"라며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을 각각 언급했다.

왕 부장은 이중 미국에 대해 지난해 11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미를 통해 열린 미중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양국 관계가 악화세를 멈추고 안정을 되찾은 건 세계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아시아 주변국에 대한 외교 성과를 평가하며 '친선혜용'(親誠惠容·친하게 지내고 성의를 다하며 혜택을 나누고 포용한다)의 실천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에 대해서도 "중일은 전략적 호혜 관계의 전면적인 발전을 재확인했다"라며 지난해 11월 미 샌프란시스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열린 중일 정상회담에서 나온 이야기를 재차 언급했다.

왕 부장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도 언급하며 아시아 외교에 대해 비교적 꼼꼼하게 다뤘지만, 유독 한국과 관련해선 별도의 언급을 내놓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는 이번 리셉션 관련 내용을 홈페이지에 전하며 왕 부장이 각국 주재 대사들과 악수하는 사진도 함께 게재했는데 주중 러시아대사와 주중 미국대사 사진을 나란히 놓으며 중국이 현재 신경쓰는 국가들이 어디인지를 재차 확인하기도 했다.

이날 리셉션장엔 정재호 주중 한국대사도 참석했지만 관련 사진은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일각에선 이러한 중국의 행동이 의도적인 '한국 배제'일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한중관계에 흐르는 기류가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다.

(사진 왼쪽)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이고리 모르굴로프 주중 러시아 대사, (사진 오른쪽)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니콜라스 번스 주중 미국 대사.(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캡처)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취임 후, 미·일·호주·베트남 외교장관과 전화 통화를 가졌지만, 아직 왕 부장과는 통화를 하지 못했다.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이 취임 후 나흘 만에 중국의 카운터파트와 통화한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이는 표면적으로는 왕 부장이 최근 아프리카·중남미·미국 연속순방에 나서며 타국에서 전화 통화를 하기 어렵다는 게 주된 이유라고 한다. 그러나 왕 부장이 중국에 돌아온 현재까지 한중 외교장관 통화에 대한 외교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조율 중"이다.

이와 함께 차기 중국 외교사령탑으로 거론되는 류젠차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도 최근 미·일·북한·인도 등 주중 대사와 면담했지만 정 대사와의 만남 계획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한 해 한중 양국은 △'방역 갈등' △윤석열 대통령의 대만 관련 발언에 따른 중국 측의 반발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의 내정간섭 발언 논란 등으로 몇 차례 크고 작은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이번 왕 부장의 행보를 두고 이러한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는 이유다.

양갑용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중국은 한국과 당분간 뜨뜻미지근한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왕 부장은 지난해 '중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복귀'를 언급했는데, 최근 한국 정부가 대중외교에 있어 '전략적 협력'이란 용어를 쓰지 않고 있는 데에 대해 일종의 불신이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일부에선 '확대해석'을 경계하는 기류도 감지된다. 중국이 비슷한 상황에서 한국 관련 언급을 내놓지 않은지 오래됐다는 취지에서다.

실제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2017년 이후 신년 리셉션에서 한국을 언급한 적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전인 2018년, 2019년에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었을 뿐이다. 미중관계는 꾸준히 언급했으며 중일관계에 대한 언급은 이번에 오랜만에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