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전설' 키신저, 한중관계 기틀 마련…주한미군 철수론 제기도

미중 수교 이후 아시안게임·올림핌 참여 및 한중 수교까지 영향
북한 비핵화 위한 中 역할 강조…中 협상카드로 '주한미군 철수' 활용 주장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별세했다. 향년 100세.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키신저 전 장관의 외교 컨설팅사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는 2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키신저 전 장관이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2023.11.30/뉴스1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100세를 일기로 타계한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냉전시대 세계 외교사에 커다란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된다. 한국전쟁을 비롯해 냉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던 한국 외교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냉담했던 한국과 중국의 수교를 마련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가 하면 한때 '주한미군 철수론'을 제기하며 한반도에 안보 우려를 불러 일으켰던 인물이기도 하다.

키신저 전 장관은 1969년부터 1977년까지 리처드 닉슨 행정부와 제럴드 포드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과 국무장관을 역임하며 미국 외교정책의 최일선에서 활약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 간 '데탕트'(긴장완화) 정책, 베트남전쟁 종식, 미국과 중국 간 수교 등을 추진했다.

'핑퐁외교'로 대표되는 미중관계 정상화는 당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에도 영향을 줬다. 독일의 '동방정책'을 벤치마킹한 북방정책은 공산권 국가들과의 수교 및 교류를 통해 남북 긴장 완화와 통일을 목적으로 한 정책으로 1992년 한중수교라는 큰 성과를 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1979년 중국이 미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서방에 대한 개방이 시작됐고 미국 동맹국들과도 관계를 개선하는 동기를 제공했다"며 "그 결과 한중 간 접촉이 이뤄졌고 중국의 아시안게임(1986) 및 서울올림픽(1988) 참여, 한중수교로 이어졌기 때문에, 키신저 전 장관이 오늘날 한중관계의 하나의 디딤돌을 놨다고 할 수 있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황재호 한국외대 국제학부 교수 겸 글로벌안보협력센터 소장은 "키신저 전 장관은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통해 45개국과 수교를 할 수 있는 전반적인 인프라를 깔아줬다"며 "그 결과 한국 정부가 정치적으로 성향이 다른 국가를 향해서도 대외정책을 펼쳐나갈 수 있는 유연성을 갖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키신저 전 장관의 역할로 미중 간 데탕트 시대가 열리고 한중 간 수교가 맺어지면서 한중관계도 급격히 개선됐다. 동시에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론도 더욱 강조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키신저 전 장관은 소위 '강대국 정치'로 북핵문제도 강대국 간의 협의와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된다는 입장이었다"며 "국제질서 측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중국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그런 면에서 한반도 문제에 미친 영향도 막대하다"라고 말했다.

다만 키신저 전 장관이 중국의 역할을 끌어내기 위해 주장한 '주한미군 철수론'은 당시로선 상당히 파격적인 방안으로, 한국 정부와 국민의 입장에서는 대북 안보에 있어 큰 걱정을 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박 교수는 "키신저 전 장관의 데탕트 정책으로 우리에겐 큰 안보 위기가 왔다"며 "데탕트 정책을 통해 소련, 중국과 화해 협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안보적 상황이 개선됐다는 이유로 주한미군을 철수하려고 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키신저 전 장관의 당시 아시아에 대한 구상은 '닉슨 독트린'으로 구체화 됐고 결국 이를 통해 주한미군 감축이 이뤄졌다. 닉슨 독트린은 베트남전쟁 실패와 국제 긴장 완화 분위기 등을 반영한 정책으로 '아시아 안보는 아시아 국가의 책임'이라는 것이 골자다. 닉슨 독트린 발표 후 주한미군 7사단 2만명이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키신저 전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서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중국과의 협상카드로 활용할 것을 제안하는 등 사망 전까지도 이 사안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을 고수했다.

yellowapoll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