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 '4강' 중 美·日·中 다녀갔는데… 러시아는 언제?

9월 루덴코 차관 방한 무산 이후 고위급 대화 조율 사실상 '중단'
대사관 통해 러북회담 내용 개략적 전달… "한국 올 이유 없어져"

한일중 외교장관. 왼쪽부터 왕이 중국 외교부장,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 박진 외교부 장관. (외교부 제공)

(서울=뉴스1) 노민호 이창규 기자 = 이달 들어 한반도 주변 '4강' 가운데 미국·일본·중국의 외교수장이 잇달아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고위급 여전히 재가동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달 9일 서울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과의 한미외교장관회담에 임했다. 이어 이달 26일엔 부산에서 박 장관과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일본 외무상,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 간의 한일·한중외교장관회담 및 한일중 외교장관회의가 잇달아 열렸다.

그러나 러시아 측과는 이보다 앞선 9월 추석 무렵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이 방한을 계획했다 무산된 뒤 더 이상 고위급 대화를 위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일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9월 당시 러시아 측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 간의 회담(9월13일)에서 논의된 사항 등을 우리 측에 설명해주기 위한 목적에서 루덴코 차관 방한을 조율했다.

그러나 루덴코 차관 방한 불발 과정에서 러시아 측이 현지 우리 대사관을 통해 러북정상회담 결과를 개략적으로나마 전해오면서 사실상 '루덴코 차관이 한국에 올 이유가 없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현재 러시아 인사 방한 추진은 진행 중인 게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9월 정상회담 이후 북한과의 '밀착'을 한층 더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미 당국 등은 러시아 측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쓸 포탄 등을 북한으로부터 공급받는 대가 정찰위성 및 우주발사체 등의 개발·완성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했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고 관련 동향을 추적·감시 중이다.

이런 가운데 북한의 '불법 행위'에 대한 러시아 측의 두둔 또한 점점 더 노골화하고 있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북한이 5년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재개한 작년 이후 안보리 차원에서 대북 문제가 논의될 때마다 다른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함께 제동을 걸어왔다. 북한의 최근 정찰위성 발사와 관련해 이달 27일(현지시간) 안보리 회의가 소집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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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을 목표로 하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는 북한의 모든 탄도미사일 및 그 기술을 이용한 비행체 발사를 금지하고 있다. 인공위성용 우주발사체 또한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하기에 이에 해당한다.

게다가 러시아 측은 우리 정부가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대응해 2018년 '9·19남북군사합의' 중 일부의 효력을 정지하는 조치를 취하자 "한국의 행보가 유감스럽다, 대규모 갈등으로 확대될 위험이 있다"(마리야 자하로바 외교부 대변인)며 북한의 불법 행위가 아니라 우리 측의 대응조치를 문제삼았다.

이와 관련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선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우리 정부가 러시아와의 고위급 소통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북한에 더 경도되는 걸 막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대사는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화 복원이다.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좌표를 찍고 외교를 하려고 하는지를 알릴 필요가 있다"며 "지정학적 이해관계나 한반도 문제를 생각할 때 중·러가 보는 우리 위치는 일본보다는 미국에 덜 가까울 것이다. 이런 부분이 확인된다면 러시아가 우리와의 대화에 나올 가능성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다른 한편에선 당분간은 러시아와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러시아가 작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을 개시한 이후 미국·유럽 등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란 점에서다. 우리 정부도 미국 등 서방국가 주도의 대(對)러시아 경제·금융제재에 참여하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현재로선 중국과 달리 러시아를 '정당한 파트너'로 대하기 어렵다"며 "러북 간 커넥션까지 드러나면서 러시아와의 대화가 더 힘들어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특히 "러시아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나라가 사실상 부재한 상황에서 우리만 나섰다간 잘못된 시그널을 줄 우려도 있다. 서방국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만들어놓은 대오에서 이탈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며 "지금은 오히려 러시아와 더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