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서 산화한 '호국 형제' 73년 만에 넋으로 만나 영면

형 최상락 하사-동생 최임락 일병 유해 대전현충원 안장

(국방부 제공)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한국전쟁(6·25전쟁)에 함께 참전해 적과 싸우다 전사한 '호국의 형제' 고(故) 최상락 하사(형)와 최임락 일병(동생)이 73년 만에 넋으로 만나 나란히 잠들었다.

국방부에 따르면 23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선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최 하사·최 일병 형제 안장식이 엄수됐다. 현충원에 6·25전쟁 당시 형제 전사자 묘역이 조성된 건 이번이 다섯 번째다.

최 하사는 1929년 울산 울주군에서 6남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했었다고 한다.

최 하사는 1945년 광복 이후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 속에 1949년 2월 당시 부산에 있는 국군 제5연대에 자진 입대했다.

그리고 1950년 북한군의 침공으로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군 제3사단 제23연대 소속으로 '울진-영해전투'에 참전한 최 하사는 같은 해 8월 '영덕-포항전투'에서 북한군 제5사단과 맞서 싸우다 21세 나이에 전사했다.

최 하사의 동생 최 일병은 1931년생으로 부산에 살던 외당숙의 식당에서 함께 일하던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형의 뒤를 따라 1950년 8월 부산에서 입대한 뒤 미군 제7사단에 카투사(KATUSA·한국군 지원단)로 배치돼 일본 요코하마(橫浜)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최 일병은 인천·서울 수복 뒤 북진 작전에 합류, 북한 함경남도 이원항에 상륙해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다 1950년 12월 19세에 전사했다.

전쟁 당시 수습되지 못했던 최 일병 유해는 이후 북한이 발굴한 미군 전사자 유해와 함께 1995년 미국 측에 인계돼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을 통해 신원이 확인됐고, 올 7월 다시 우리나라로 봉환됐다. 최 일병 유해 봉환엔 조카인 최호종 해군 상사가 함께했다.

대전현충원 내 최 하사·최 일병 묘비 앞엔 고인들의 동생이 쓴 추모 글과 이들 형제의 전투경로 등이 새겨진 추모석이 설치됐다.

최 하사 현재의 막냇동생 최용씨(79)는 "8남매 중 막내인 나만 남았는데 이렇게 두 형님을 넋이라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어 꿈만 같다"며 "어려운 과정을 거쳐 형님들을 호국보훈의 성지에 안장할 수 있도록 고생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박 총장은 "선배들의 핏값으로 오늘도 태극기가 창공에 휘날릴 수 있게 됐고,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속 선진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며 "선배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확고한 대적관으로 무장하고 매순간 이기는 게 습관이 되는 자랑스러운 육군, 승리하는 육군을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pej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