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오부치 선언' 25주년 사흘 앞… 계승·발전 위한 새 메시지 나오나

강제동원 해법 발표 뒤 한일 '해빙기' 도래… 민간 교류도 늘어
"日 호응은 여전히 부족… 불신·불안·불만 해소 위한 노력 필요"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대통령실 제공) /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오는 8일이면 한일 간 과거사 극복과 미래지향적 발전을 향한 중요 토대가 됐다는 평가를 받는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이른바 '김대중-오부치(小淵) 선언'을 채택한 지 정확히 25주년이 된다.

지난 1998년 10월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표된 이 선언은 총 11개항으로 구성돼 있으며, 특히 일본 측은 이 선언에서 과거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한 데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를 문서화했다.

일본 측이 그 전까지 당국자의 담화 등 구두(口頭)로만 해왔던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반성·사죄를 양국 정부 간 공식 문서에 담은 건 이 선언이 처음이다.

특히 우리 정부는 올 3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제3자 변제) 발표로 최근 수년 간 경색 국면을 이어왔던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튼 이후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계승·발전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이번 '김대중-오부치 선언' 채택 25주년을 계기로 일본 측으로부터 향후 한일관계와 관련해 더욱 유의미한 메시지가 나올 수 있을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앞서 2018년 10~11월 일본 전범 기업들에 대한 우리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과 그에 따른 일본 측의 반발로 꽁꽁 얼어붙었던 올 들어 '해빙기'를 맞이한 건 우리 정부가 국내 여론 악화 부담에도 불구하고 '제3자 변제' 방식의 해법을 발표, 일본 측의 법적 부담을 덜어줬기 때문이란 데 한일 간에 이견이 없다.

그에 힘입어 올 3월과 5월엔 한일정상회담이 각각 일본 도쿄와 서울에서 잇달아 열리며 양국 정상 간 '셔틀외교' 또한 12년 만에 재개됐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법적 지위 정상화, 일본발(發) 수출규제 해제, 김포~하네다(羽田) 항공노선 운항 재개, 관광목적 단기방문 비자 발급 재개 등 정상회담 후속 조치도 뒤따랐다.

일본정부관광국(JNTO)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한 달간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이 56만9100명으로 '최다'를 기록할 정도로 민간 교류 또한 눈에 띄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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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국내 여론 다수는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인식 측면에서 "일본 측의 호응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앞서 5월 방한 당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나도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한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으나, 이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닌 기시다 개인의 것이었다.

기시다 총리는 이보다 앞선 3월 한일정상회담 때부터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 "1998년 10월 한일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말해왔지만, 우리 측이 기대했던 '사과' '반성'에 대한 명시적 언급은 없었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로부턴 기시다 총리가 계승하겠다고 한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인식'엔 "미래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지워선 안 된다"고 한 2015년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총리의 이른바 '전후(戰後·제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담화도 포함되기 때문이란 등의 해석이 잇따랐다.

게다가 최근엔 기시다 내각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여론 지지율이 수개월째 '저공행진'을 이어가면서 한일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기 어렵게 됐다는 분석도 제시되고 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지금 일본에선 한국 여당(국민의힘)이 내년 4월 총선에서 패하면 '한국이 또다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때가 되면 되풀이되는 일본 측의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이나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등 역시 한일관계를 언제든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들이다. 게다가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부지 내 방사성 오염수의 해양 방류 처분도 한일 간의 새로운 갈등 요소로 자리잡았다.

이런 가운데 한일 양국 외교당국은 5일 서울에서 차관급 전략대화를 9년 만에 재개한다. 이 역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간 합의에 따른 것이다. 한일 양측은 이 자리에서 관계 개선 동력을 이어가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해 협의할 전망이다.

한일관계 소식통은 "양국관계가 최근 1년 새 많이 달라졌지만 '완전 복원'을 얘기하긴 아직 어려운 상황"이라며 "서로에 대한 불신·불안·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무엇보다 일본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준다면 좀 더 많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