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기부로만 배상금 마련'?… 외교부 "결정된 바 없어"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정관 개정 맞물려 논란 가열
피해자 측은 "日 기업 빠진 해법은 구걸과 다름없다" 거부
- 노민호 기자, 이창규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이창규 기자 = 우리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 해법과 관련해 일단 우리 기업의 기부금만으로 기금을 조성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1인당 1억원 또는 1억5000만원)에 상당하는 금액을 대신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 같은 방안이 확정될 경우 그간 피해자 측이 요구해온 일본 측의 사죄와 배상 책임 인정은 사실상 배제된다는 이유에서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26일 기자회견에서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피해자 측 지원 단체와 대리인단은 지난주 외교부 측으로부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유력한 안(案)을 청취했다"며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우리 기업들의 기부로 재원을 마련한 뒤 피해자들에게 대법원 판결에 따른 손해배상금 상당의 금액을 지급하는 게 바로 그 '유력안'이라고 밝혔다.
모임은 "이는 일본 피고 기업의 사죄나 (자금) 출연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일본 다른 기업들의 출연조차 없는 말 그대로 일본을 면책시켜주는 방안"이라며 "피고 기업이 빠진 해법은 논의할 가치가 없다. 구걸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 당국자는 '유력안'이든 '잠정안'이든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은 "아직 결정된 게 없다"고 설명했지만, 정부 안팎에선 '이미 한일 간에 관련 논의가 상당 부분 진행된 것 같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유력안'에서 배상금 지급 주체로 지목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현재 관련 업무 수행이 가능토록 정관 변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진 점도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재단은 지난 21일 이사회에서 정관 변경 문제를 논의한 데 이어, 이르면 내주 초쯤 행정안전부에 정관 변경 승인을 신청할 계획이다.
재단 관계자는 "재단이 (배상금 대위변제 수행) 역할을 맡더라도 현재로선 정관상 근거가 전혀 없다"며 "역할을 맡을지 말지는 나중 문제이고, 최소한 피해자에 대한 (배상)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한단 측면에서 새 정관을 마련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정관 변경의 경우 (승인 신청 후 통과까지) 통상 30일이 소요된다"며 "다만 이번 건의 경우 목적사업에 1줄 정도 추가되는 것이다 보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세종대 교수는 "피해자들이 배제된 상황에서 정관만 바꾼다고 해서 역사적 문제가 청산되는 건 아니다"며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때 피해자를 제외시킨 과오를 되풀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호사카 교수는 "재단이 정관을 고쳐 배상을 할 수 있게 만든다고 한들 일본 기업의 사죄가 들어가야 배상이지 그렇지 않으면 보상"이라며 "관건은 결국 피해자들의 승인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이런 가운데 한일 외교당국은 이날 일본 도쿄에서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과 후나코시 다케히로(船越健裕)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참석하는 국장급 협의를 열어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를 중점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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