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남은 日 관함식…'욱일기' 논란 속 참가 여부 고심하는 해군
2018년부터 관함식 때마다 갈등…"해결책 찾기 어려운 난제 중 난제"
- 허고운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일본 해상자위대가 창설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달 6일 나가와(神奈川)현 남부 사가미(相模)만에서 개최하는 국제관함식에 우리 해군을 초청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내걸 욱일기 논란 속 우리 해군은 참가 여부를 계속 고심 중이다.
해군은 행사가 약 2주 남은 상황에서도 참석 여부를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강제동원 배상 문제, 수출 규제 등 한일관계 악재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일관계 개선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욱일기'가 최대 걸림돌이다.
이종호 해군참모총장은 지난 21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해군본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 '11월5~10일 일본 출장을 가느냐'는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그렇다"며 "서태평양 해군 심포지엄 참가가 목적"이라고 답했다. 관함식이 열리는 기간 해군참모총장이 일본에 체류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 총장은 국제관함식 참석 여부에 대해선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총장의 관함식 참석 여부는 국방부 차원에서 결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관함식은 함대와 장병을 검열하는 의식으로 해군의 대표적인 군사외교 행사다. 일본은 이번 관함식에 우리나라와 미국, 중국 등이 참여하는 서태평양 해군 심포지엄 21개국 중 러시아를 제외한 모든 회원국을 초청했다.
일본의 초청장은 지난 1월 우리 정부에 전달됐으나, 당시 문재인 정부는 행사가 임기 이후에 열리는 만큼 판단을 미뤘다.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공약한 만큼 참석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왔으나 관함식이 2주 앞으로 다가온 현재까지 최종 결정은 나오지 않고 있다.
군 소식통은 "야당은 국방위 종합국감이 있는 24일까지 관함식 참석 여부를 확정지어 보고해달라고 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반대 여론이 많기 때문에 한일관계와 국민감정 등을 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본 해상자위대가 공식기로 사용하고 있는 욱일기는 과거 일본제국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일본은 욱일기에 대해 "풍어와 출산 등을 축하하는 깃발로 일상생활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겪은 우리 국민에겐 공감대를 얻기 어려운 설명일 수밖에 없다.
통상 관함식에 참석하는 외국 함정은 주최국의 주빈이 탑승한 함정을 향해 경례를 하도록 돼 있다. 이번 행사의 경우엔 일본 군함에 경례를 해야 하는데, 일본 군함에는 욱일기가 걸릴 것이기 때문에 바로 이 관례가 우리 해군의 입장에서는 가장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 정상화와 국제 관례라는 '대의'를 감안하더라도 '민족 자존심'을 버리는 행동이라는 비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설훈 민주당 의원은 이 총장에게 "욱일기에 경례하게 되면 일본의 식민지배 통치이념에 동조한다는 선언과 같다"며 "경례를 안 할 자신이 있으면 가라. 경례하면 옷을 벗어야 할 수도 있다"라고 공개적인 '경고성 비판'을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과거에도 관함식 참석과 욱일기 게양을 두고 충돌한 적이 있다. 2018년 10월 우리 해군이 제주에서 국제관함식을 열었을 당시 일본은 욱일기를 건 함정을 파견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욱일기 반대 여론이 커지자 우리 해군은 참가국들에 자국 국기와 주최국 국기인 태극기만을 게양하라고 요청했다. 국제 관례상 해군 함정은 해군기를 게양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 만큼, 일본은 즉각 반발했다.
일본은 당시 우리 정부의 요청을 "비상식적인 요구"라고 받아쳤다. 일본 국내법상 자위대 소속 함정은 자위대기를 달도록 규정돼 있기도 했다. 우리 군은 결국 "욱일기 게양을 고수하는 경우 사열 참가를 거부한다"라는 최후 통첩을 보냈고, 일본은 끝내 관함식 불참으로 맞대응했다.
우리 해군은 관함식 행렬에선 당시 좌승함이었던 상륙함 '일출봉함'에 과거 조선 수군 대장기였던 '수자기'를 내걸었다. 그러자 일본 측은 외무성을 통해 이에 대한 항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국기만 게양하라는 요청을 한국 측이 스스로 어기는 모순을 보였다는 지적과 함께다.
2019년 4월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열린 인민해방군 해군 창설 70주년 기념 국제관함식에서도 한일의 신경전이 있었다. 중국이 일본 함정의 욱일기 게양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해군은 원래 파견 대상으로 검토됐던 독도함 대신 신형 호위함을 파견, 참가 전력의 급을 낮추며 불편한 심기를 전달했다.
일본은 2019년 10월 국제관함식 때는 아예 우리 해군을 초청하지 않았다. 2018년부터 이어온 한일 해군의 갈등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2019년 관함식은 태풍으로 인해 취소됐다.
이처럼 최근엔 한일 양국이 관함식 때마다 욱일기를 놓고 치열하게 맞붙고 있지만 예전에는 달랐다. 우리 해군은 2002년과 2015년 일본이 개최한 관함식에 함정을 보냈고, 일본도 1998년과 2008년에 한국에서 열린 관함식에 함정을 파견했다. 이때 일본 함정은 욱일기를 달고 있었으나, 양국 해군에선 이와 관련한 별다른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
욱일기는 1954년 일본 해상자위대에 채택되면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욱일기 거부 여론은 2010년대부터 본격 형성됐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 2012년 이후 일본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군국주의 회귀를 꿈꾸는 세력의 활동이 늘어났고, 이때 욱일기가 일본 극우 시위대의 '필수 아이템' 중 하나로 사용되면서다.
한 해군 장교는 "욱일기 문제 자체는 언젠간 해소해야 하면서도 해소가 불가능해 보이는 난제"라고 말했다. 이 장교는 "일본이 해군기를 바꿀 리도 없고, 다수의 주일 미군기지가 욱일기가 들어간 마크를 쓰는 등 이 문제에 외국의 관심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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