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대법 의견서 철회 불가"… 강제동원 해법 '변수' 되나

박진, 광주서 피해자 만났지만… '간극' 못 좁혀

박진 외교부 장관(왼쪽)과 미쓰비시중공업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2022.9.2/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외교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와 관련해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철회하라는 피해자 측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단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이 문제 해법 도출과정에서 자칫 외교부의 해당 의견서로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단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2일 광주에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와 양금덕 할머니를 잇달아 만났다. 이 할아버지는 지난 2018년 10월 일본제철, 그리고 양 할머니는 같은 해 11월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을 상대로 한 강제동원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각각 최종 승소했다.

그러나 이들 일본 전범기업들은 우리 대법원의 해당 판결 이후에도 이들을 포함한 피해자 측과의 배상 협의에 불응해왔다.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 정부에 제공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며 우리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박 장관은 이날 이 할아버지와 양 할머니 면담 뒤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가슴이 많이 아프다"며 "두 분의 말씀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귀담아 듣고 당시 상황, 현재 마음에 담고 있는 얘기를 생생하게 잘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오늘 피해자들을 직접 만난 것을 바탕으로 강제징용 문제를 최대한 조속히 풀도록 노력하겠다"며 "그 과정에서 진정성과 긴장감을 갖고 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장관은 일부 피해자 측에서 외교부가 대법원에 제출한 이 사건 관련 의견서를 '철회하라'는 요구와 관련해선 "(철회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박 장관은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는 민관협의회를 통해 의견을 경청·수렴했던 것과 한일 간 교섭을 진행해온 그동안의 외교활동을 참고로 해서 작성해 법원에 보낸 것"이라며 "법령과 절차에 의해 정당하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가운데). 2022.9.2/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외교부는 지난달 7월26일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 양 할머니와 김성주 할머니가 제기한 미쓰비시의 국내 상표권·특허권 특별현금화(매각) 명령 사건을 심리 중인 대법원 민사2·3부에 의견서를 제출했다.

외교부가 '대법원 민사소송규칙'에 따라 제출한 해당 의견서엔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와 관련해 "정부는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대일(對日) 외교협의를 지속 중"이란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피해자 측은 외교부가 대법원에 '사실상 현금화 사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라'는 취지로 해당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반발했고, 피해자 측 관계자들은 외교부가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와 관련한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운영해온 민관협의회에도 전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금화 사건 관련 법적 절차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는 양 할머니와 김 할머니 측 관계자들은 7월 초 민관협의회가 처음 가동됐을 때부터 불참해왔다.

외교부는 피해자 측의 불참 결정에도 불구하고 민관협의회를 계속 가동, 가급적 법원의 현금화 결정 이전에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를 매듭지을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해 피해자 측과 일본 측 모두를 설득해보겠단 입장이다.

그러나 대법원에 대한 의견서 제출 때문에 "외교부와의 신뢰가 깨졌다"고 주장하는 한 피해자 측과의 '간극'을 좁히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 정부가 생각하는 이 문제 해법이 '대위변제'(한국 정부가 일본 기업 배상금을 먼저 지불하고 추후 일본에 청구하는 방안)라고 하더라도 피해자 측이 우리 정부가 주는 돈을 안 받겠다고 하면 해법 도출의 의미가 없어진다"며 "이 경우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때와 같은 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ntig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