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피해배상' 민관협, 출범 한 달 만에 중단 위기
피해자 측 지원단·대리인단 "신뢰 깨졌다" 전원 불참 선언
외교부 "다양한 방식으로 원고 측 의견 수렴 위해 노력 중"
- 장용석 기자
(서울=뉴스1) 장용석 기자 =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배상 판결 이행문제에 관한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민관협의회가 출범 한 달 만에 가동 중단 위기에 놓였다. 협의회에 참여해온 강제동원 피해자 측 대리인들이 3일 협의회 '불참'을 선언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 전범기업 일본제철과 미쓰비시(三菱)중공업·후지코시(不二越)를 상대로 강제동원 피해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 중인 피해자 지원단(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과 대리인단(법무법인 해마루 장완익·임재성·김세은 변호사)은 3일 기자회견에서 외교부가 이 소송 관련 의견서를 피해자 측과 상의 없이 대법원에 제출한 사실을 문제 삼아 "신뢰 관계가 파탄 났다"며 앞으로 열릴 민관협의회 회의엔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재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인 양금덕·김성주 할머니 측 관계자들(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및 소송 대리인단)이 지난달 4일 1차 회의 때부터 민관협의회에 불참한 데 이어, 다른 피해자 측 관계자들 또한 모두 협의회에서 이탈하게 된 것이다.
이에 앞서 우리 대법원은 2018년 10월엔 일본제철, 그리고 같은 해 11월엔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각각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1인당 1억원 또는 1억5000만원을 지급하란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일본 측은 우리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피해자 측과의 배상협의에 불응해온 상황이다. '강제동원 피해자 등에 대한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결 당시 한국 정부에 제공한 총 5억달러 상당의 유무상 경제협력을 통해 이미 해결됐다'는 게 일본 측 주장이다.
이에 피해자 측에선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 압류 및 매각을 위한 법적 절차 착수했고, 앞으로 1~2개월 내에 그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실제로 일본 기업들의 국내 자신 매각 및 현금화가 이뤄질 경우 한일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법원 결정 이전에 당사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하고자 피해자 측과 각계 전문가, 그리고 외교부가 참여하는 민관협의회를 구성했다.
민관협의회는 지난달 4일 출범 당일, 그리고 같은 달 14일 등 그동안 2차례 회의를 열었고, 이후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일본 방문(7월18~20일) 과정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와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상 등과 만나 우리 정부의 문제 해결 노력을 설명하고 일본 측에도 '성의 있는 호응'을 요청했다.
외교부가 최근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도 "정부는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에 부합하는 합리적 해결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대일(對日) 외교협의를 지속 중이다" "정부는 민관협의회 등을 통해 원고 측을 비롯한 국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다각적인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가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문제 해결 노력을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단·대리인단은 정부가 사실상 대법원에 일본 기업 자산 현금화에 관한 '판단을 유보하라'는 취지로 해당 의견서를 제출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 특히 이들은 "헌법이 보장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 "지난 2차례 회의에서 피해자 측 입장은 이미 충분히 전달했다"며 밝혔다. 피해자 측으로선 '의사결정 기구가 아닌 의견 수렴 기구에 불과한 민관협의회에 더 이상 참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만 피해자 지원단·대리인단은 이날 입장문에서 "정부 안(案)이 확정되면 그에 대한 동의 여부 절차엔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후 정부가 이 문제를 위한 최종안을 제시한다면 그 수용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는 조만간 민관협의회 3차 회의를 열어 강제동원 피해배상 문제 관련 해법을 계속 모색한다는 방침이나, 피해자 측이 모두 불참하는 협의회는 사실상 "제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외교부 당국자는 "민관협의회 등을 통해 원고 측을 비롯한 국내 각계각층 의견을 수렴하는 등 진정성 있는 노력을 경주해간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며 "민관협의회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원고 측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ys4174@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