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조교의 편지 "훈련병은 누워있고 우린 눈치만…조교도 사람인데"

충청남도 논산에 자리한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에서 입영장병들이 입소하고 있는 모습. ⓒ News1

(서울=뉴스1) 박태훈 선임기자 = 훈련병 인권침해 논란으로 한동안 시끄러웠던 육군훈련소의 한 조교가 조교들이 "우리도 사람이다"며 열악한 환경, 통제 불능의 훈련병들 사이에서 사명감 하나로 고분분투하고 있는 자신들의 사정도 알아 달라며 하소연, 잔잔한 감동과 함께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육군련소는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신병 훈련소로 충청남도 논산에 위치해 있는 까닭에 흔히 '논산 훈련소'로 불린다. 육군훈련소 조교 A씨는 27일, 군관련 제보채널인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육대전)에 장문을 편지를 보냈다. 육대전 운영자인 김주원씨(27)도 육군훈련소에서 군복무를 한 까닭에 채널 이름을 '육군훈련소~'라고 지었다.

◇ 조교 "코로나19 과잉방역 일부 맞지만 우리도 똑같이 격리…지시는 위에서 욕은 조교가"

A씨는 우선 "훈련병 인권에 대한 뉴스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부실식단에 대한 제보가 이어지면서 육군훈련소에서도 급하게 불끄는 방식으로 격리통제지침이 바뀌고 훈련병 복지가 굉장히 많이 상향조정되고 있는 중이다"며 큰 변화가 일고 있다고 소개했다.

A씨는 가장 큰 논란이 됐던 '조교들이 화장실 오래 쓰면 욕을 한다', '열흘간 샤워도 못하게 한다' 는 등 코로나19 과잉방역 문제에 대해 "1개 교육대에 보통 1000여명대의 훈련병이 입소하는데 누군지 모를 확진자가 있다는 가정하에 격리통제를 하다보니까 화장실 이용, 샤워가 많이 제한이 되었던 부분은 사실이다"고 했다.

하지만 "육군훈련소에서 복무중인 기간장병들도 휴가를 복귀했을 때도 훈련병과 똑같이 2주간 격리되며 일주일 동안 샤워, 세수, 양치 한 번 못하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이용 못하고 격리생활을 했었다"며 결코 차별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다만 "개선 되어야할 부분은 맞지만 이런 지침을 내린 것은 간부들이며 조교들은 통제받은 지침대로 움직이고 시키는 대로 매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며 조교에게 모든 욕을 쏟아붓지 말아달라고 했다.

전투복 위해 방호복까지 겹쳐 입은 육군훈련소 조교가 입영심사대에서 입영장병들에게 이동 장소를 안내하고 있다. ⓒ News1

◇ 중대별 훈련병 240명씩…조교 4명이 새벽 6시 이전에 일어나 밤 11시까지 매달려

A씨는 "훈련병이 들어오면 중대별로 240명 가량의 훈련병이 배치된다"며 중대당 4명의 조교(인원이 부족하고 제때 충원도 되지 않음)가 240명의 훈련병들을 위해 매일매일 고행의 행군을 하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조교들 일상에 대해 △ 훈련보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전투복위에 방호복을 겹쳐 입고 △ 200명이 넘는 훈련병들의 식사를 매 끼니마다 막사로 옮기고 △ 화장실 이용을 생활관별로 통제하고 △ 매 시설물을 1개 생활관이 이용할 때마다 소독해주고 △ 훈련병들 취침상태 확인하고 △ 다음날 일정 결산하고 △ 다 마치면 22시가 넘어 씻고 23시가 돼야 잠든다 △ 이어 다음날 훈련병들 일과와 격리통제를 위해 일어나서 오전 6시까지 준비를 하고 방호복을 입고 내려간다고 설명했다.

하루 17시간이 넘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방호복을 입은 육군훈련소 조교가 입영장병과 가족들을 안내하고 있다. ⓒ News1

◇ 교육훈련보다 식사챙기기, 배식 저울 제기 등 다른 일 더 많아…사명감에 버티지만

A씨는 "정말 힘들어 그만두고싶다고 생각하는 조교들이 태반이지만 남은 동기나 후임, 선임들을 생각하면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조교는 없다"며 "이런 사명감을 가지고 근무를 서지만 돌아오는 보상 따위는 없고 훈련소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A씨는 "사실상 조교들의 일은 교육훈련보다는 다른 일이 더 많다"고 했다.

즉 △ 훈련병들 애로사항 맞춰주기 △ 아픈 훈련병 의무실이나 병원에 데려가기 △ 정량배식 위해 저울을 재고 배식에 신경쓰기 △ 매끼니마다 아픈훈련병들 약 나눠주기 △일요일마다 종교활동 인솔하기 △ 훈련병들 px 이용, 전화 이용, 보급품 불출, 훈련병들 세탁추진, 신체검사, 혈액검사, 인성검사, 지능검사, 적금신청, 보급품 사이즈 조사, 분리수거하기 등이라고 했다.

A씨는 이러한 일들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비하면 그래도 견딜만 하다고 했다.

◇ 훈련병은 누워있고 조교는 그저 지켜볼 뿐…훈련병들, 이런 사정 알고 악용

A씨는 "훈련병들 휴식을 보장해준다며 일과가 끝난 이후에는 아무것도 못하게 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업무들도 못한다"면서 "훈련병들은 누워서 놀고 떠들고 조교들은 그런 모습을 그저 지켜볼 뿐"이라고 했다.

또 "훈련병들에게 경어를 사용해주고 좋은 대우를 해주지만 이젠 하다하다 일과시간에 누워있어도 된다는 통제(지시)로 조교가 생활관에 들어가든 말든 누워 있고 조교들이 있어도 소리를 빼액 질러대며 욕설을 일삼는 훈련병들이 태반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는 흡연까지 허용하게 한다니 조교들의 인권은 조금도 신경써주지않으면서 훈련병들 눈치보기 바쁘다"고 한탄했다.

A씨는 "훈련병들에게 윽박도 지르지 말라고 하고 이런 상황을 훈련병들도 알고 들어와 악용, 조교들이 통제하기가 너무나도 힘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과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국방위원회 간사 등 소속 위원들이 지난 26일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를 방문해 장병 급식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기동민 의원실 제공) ⓒ News1

◇ 조교도 사람, 훈련병 반만이라도 '조교 인권' 배려해 달라…

그럼에도 "훈련병 풀어줘놓고 통제가 안되면 조교 탓으로 돌리고 혼나는 것은 결국 조교들이다"며 "누군가 책임감을 갖고 통제하는 건 맞지만 정말 책임감을 포기하게 만든다"고 힘들어했다.

A씨는 힘든 것은 훈련조교뿐 아니라 행정병들도 마찬가지다며 "조교들도 사람이니 훈련병 생각하는 것 반만이라도 조교 인권도 신경써줬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끝으로 A씨는 "육군훈련소 모든 기간병들, 정말 다들 고생하고 다들 너무너무 잘해주고 있다"며 전우들에게 '힘내자'고 외쳤다.

A씨의 글에 27일 낮 12시 현재 2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위로와 격려, 남은 군생활 건강하게 마치고 전역할 것을 당부하는 훈훈한 내용들이었다.

buckbak@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