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유연한 근로형태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안수지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 부연구위원
안수지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 부연구위원

최근 한 외국계 기업이 주 35시간 근무제(9 to 5)를 시행한 이후 매년 30명 이상의 직원이 출산하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해당 기업은 근무시간뿐만 아니라 가족친화적인 문화와 함께 사내에 어린이집, 병원, 운동센터 등 편의시설 지원을 강화하면서 여성이 다니기 좋은 기업으로 자리 잡았고, 현재 근무하는 여성 임직원은 396명으로 그 비율이 61%이며, 전체 대기업 기준으로 보더라도 매우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여성의 경력단절 확률은 무자녀 여성의 경우 9%지만 유자녀 여성은 24%에 달한다는 KDI의 최근 연구 결과를 볼 때, 자녀 생애 초기에 집중되어 있는 육아휴직(여성의 경우 초산 연령은 33세이며, 77.9%가 자녀 1세 미만일 때 휴직을 사용) 및 육아기 단축근무 제도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인 듯하다. 결국에는 육아휴직제도를 사용할 만큼 모두 사용한 이후에도 여전히 돌봄이 필요한 연령인 어린 자녀의 돌봄 공백을 해소할 수 없다면 경력단절 및 출산 기피 현상을 차단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2025년부터는 육아휴직 대상 자녀 연령이 초등학교 6학년으로 상향되며, 나누어 쓸 수 있는 육아휴직 최대 기간은 18개월이라고는 하나, 영·유아기에서 초등(저학년) 시기까지 최소 10여 년에 걸친 돌봄이 필요하다.)

OECD 데이터로 살펴볼 때, 유자녀 여성의 고용률은 막내 자녀의 연령이 3~5세일 때 주요국 대부분이 70~80% 사이로 나타난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60%를 겨우 넘어서는 수준으로 최하위권에 속한다. 막내 자녀 연령을 6~14세로 높여보더라도, 우리나라 유자녀 여성 고용률은 65%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여성 고용률이 높은 스웨덴, 덴마크, 네덜란드, 핀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 OECD 국가들에서는 출산율이 재택근무 비율 및 시간제 근로 비중과 양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것이다. 즉, 근로시간 및 근로형태의 유연성은 자녀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줌으로써 합계출산율과 여성의 고용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EU 15개국 전체 근로자의 시간제를 포함한 유연근로 비율은 6세 이하 자녀가 있는 여성의 경우 80% 내외의 활용도를 보이나, 우리나라는 25%에 불과한 수준이며, 모형을 활용한 분석에서는 선진국에서 여성 고용률이 높고 출산율이 높은 배경에는 유연근로제 활성화가 있음을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경제활동 활성화와 저출생 완화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만큼, 유연근로 활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결과다.

이러한 사실은 경직적인 전일제 중심에서 유연한 근로환경으로의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근거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유연한 근로형태로의 변화가 시도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 지자체 및 공공 영역에서는 주 1회 재택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육아를 하고 있는 공무원 대상 설문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비율이 재택근무시간 전후 통근시간을 절약하여 자녀의 등하교를 지원할 수 있다고 응답하였고, 90%에 가까운 비율로 재택근무가 일과 육아 병행에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일본의 경우에도 내년부터 모든 기업에 대해 유연근무제도, 재택근무제도, 단시간 근무제도 중에서 최소 2개 이상의 제도를 의무적으로 채택하도록 하는 획기적인 출산율 제고 방안을 제안하고 있으며, 도쿄도에서는 내년 4월부터 도 공무원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도입(유연근무제를 활용하여 4주 155시간 근무시간을 채우면 매주 평일 하루를 쉴 수 있도록 하는 방식)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처들은 공통적으로 아이를 직접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유연하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다만 이러한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노동계, 경영계의 정부와의 협력과 함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육아휴직제도 활용에서 한계점으로 제기되고 있듯이, 민간 중소·영세기업의 경우 대체할 만한 인력 부족, 업무 전가에 대한 부담 등으로 고용주 측과 고용인 측 모두 현실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며, 실제로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육아휴직 활용도가 급격히 감소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여성의 비율이 높은 현실을 고려할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에 따라 기업들의 참여 및 실제 제도 활용률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제도 도입 취지와는 다르게 우려할 만한 부작용인 '제도 활용 근로자에 대한 낙인' 및 '여성 고용 기피'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일부 기업의 변화가 아닌 사회 전반적인 근로형태 전환 및 인식 변화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안수지 국회미래연구원 삶의질그룹 부연구위원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