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지방소멸 극복을 위한 중소도시 르네상스: 창조와 연계
대한민국은 초저출생과 초고령화로 인구 감소 위기에 직면했다. 특히 비수도권 지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지역소멸이라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수도권과 대도시로의 인구이동으로 지역 자체가 사라질 위험에 놓인 것이다. 2019년을 기점으로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을 추월했다. 수도권 면적은 대한민국 전체의 11.8% 수준에 불과하지만, 2024년 8월 기준 50.8%의 국민이 수도권에 거주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흐름이 계속된다면 수도권 집중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2030년에는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인구보다 165만 명 더 많아지고, 2040년에는 그 격차가 262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호(2024)에 따르면, 2022년 소멸위험지역은 4개에 불과했으나, 2024년에는 130개로 증가했다. 전국 228개 시군 중 절반이 넘는 57%가 소멸위험지역이라는 것이다. 특히 전북의 14개 시군 중 13개, 전남과 경북은 22개 시군 중 20개가 소멸위험지역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지방 대도시도 지방소멸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광역시도 중 8개 시도가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제2의 도시라 불리는 부산이 광역시 중 최초로 소멸위험지역으로 진입한 것이다. 대도시조차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한 상황에서, 중소도시와 농산어촌의 위기는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읍면 지역에서 익숙한 풍경이 된 빈집, 빈점포, 텅 빈 놀이터와 운동장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방소멸의 가장 큰 원인은 직주락의 모든 요소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부산상공회의소(2023)에 따르면,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 중 73.1%인 743개 사의 본사가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그 중 서울에 위치한 기업의 수는 518개나 된다. 사람과 기업이 수도권으로 몰리면서 소비 또한 수도권에 집중되고 있다. 균형발전종합정보시스템(2024)에 따르면, 2023년 카드소비액이 수도권은 50조 2481억 원이고, 비수도권은 35조 434억 원이다. 수도권의 카드소비액 비중이 58.9%로 비수도권보다 17.9% 포인트 더 높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일반대학, 전문대학을 포함한 전체 대학의 35%인 133개 대학이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
이로 인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삶의 질도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 염지선(2023)에 따르면,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조사 결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삶의 질 차이는 7.58점으로, 대도시권과 중소 시군의 삶의 질 격차인 7.36점보다 크다는 응답이 나왔다. 특히 주요 인프라 중 의료 인프라의 차이가 삶의 질 수준의 격차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지금까지 취학과 취업이 인구 유출의 주요 원인으로 여겨져 특화산업 육성이나 산업단지 조성에 주력해 왔지만, 이제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 의료, 주거, 문화, 여가 등 삶의 질 전반이 지역소멸 위기의 원인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중소도시 르네상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소도시는 전통적으로 농산어촌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으며, 농산어촌이 필요로 하는 도시 인프라를 제공해 왔다. 또한, 중소도시는 농산어촌에서 공급하는 식품, 관광, 문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중요한 수요처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선희(2018)에 따르면, 지방의 중소도시들조차 대도시로의 인구 유출로 인해 생활 인프라가 약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인프라 약화는 다시 대도시로의 인구 집중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이는 농산어촌 주민들 역시 수도권과 대도시로의 이동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소도시 르네상스는 중소도시의 회복과 창조를 통해 강소도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국토의 세포인 소도시들을 건강하게 육성하자는 김선희(2018)의 제안과 맥락을 같이한다. 해외에서는 이미 강소도시로 알려진 사례들이 많다. 세계적인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모노클'(Monocle)은 2021년 세계에서 살기 좋은 작은 도시들을 선정하여 발표한 바 있는데, 포르투갈의 포르투, 벨기에의 루벤, 일본의 이토시마, 스위스의 루체른, 캐나다의 빅토리아, 스위스의 로잔과 바젤, 이탈리아의 볼차노, 덴마크의 올보르, 노르웨이의 베르겐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들이 포함되었다.
대표적으로 포르투는 패션과 가구 제조 산업을 통해 경제적 성장을 이루었고, 벨기에의 루벤은 혁신적인 산업 이벤트와 직업 박람회를 통해 창의적인 인재들을 유치하며 발전했다. 일본의 이토시마는 젊은 농부들과 지역 기업을 중심으로 농축수산물 산업을 발전시켜 지역 특색을 유지하면서 상위권에 올랐다. 스위스 루체른은 쉰들러, 부허리, 엠미와 같은 주요 기업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연과 문화를 보존하며 지역을 공원과 여가의 중심지로 변화시켰다. 상대적으로 외진 곳에 위치한 빅토리아는 선박, 국제공항, 수상비행기, 그리고 시내에선 무료 버스 패스와 자전거 도로망 확충을 통해 청년층과 외국인에게 매력을 높였다.
중소도시 르네상스는 대도시와 경쟁하거나 그들을 모방하는 것과는 다른 방향을 지향한다. 도시의 몸집을 키우기 위해 물리적인 인프라에 집중하기보다는, 각 도시가 지닌 고유한 창조력을 바탕으로 발전하는 길을 제시한다. 이러한 접근은 도시의 독특한 문화와 자원을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모노클이 제시하는 살기 좋은 도시의 선정 기준이 공간의 접근성 외에 시장의 혁신성, 문화의 포용성, 환경의 지속성, 비즈니스 기회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만의 개성을 살린 창조적 경험과 창조적 공간, 창조적 산업을 통해 틈새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이와 함께 광역 단위에선 도시 간의 연합을 통한 대도시권 형성이 필요하다. 동일한 생활권과 경제권을 이루는 도시 간 연합을 통해 대도시에 버금가는 상급종합병원과 수도권에 버금가는 교육, 복지, 법률 서비스,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인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광역 내 문화 중심지를 조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특정 중소도시는 문화, 예술, 디자인과 같은 창조적 산업에 집중하고, 다른 도시는 의료, 교육, 연구 개발의 중심으로 기능할 수 있다. 각 도시가 자신만의 강점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도시 간 협력을 통해 주민들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22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제시한 여수-순천-광양 이순신 특례시는 동일한 생활권과 경제권을 공유하는 지역 간 협력을 통해 강력한 대도시권을 형성하는 방안이다. 이 지역들은 각각의 강점을 바탕으로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민들에게 더 나은 삶의 질을 제공할 수 있다. 전남권 내에서 이러한 도시권이 형성되면 인구 유출을 막고, 대도시의 인프라를 향유하고자 하는 도민들의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지방분권화가 실현돼 N개의 지역이 N개의 개성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은 정부의 지원에 따라 지역마다 비슷한 사업들이 계속해서 복제되고 있다. 모든 지역이 워케이션에 나섰고, 모든 지역이 청년들을 로컬 크리에이터로 만들려고 한다. 나아가 단순한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을 위한 네트워크형 지방행정 시스템도 갖춰져야 한다(김선희, 2018). 그리고 무엇보다 도시의 창조력을 높이고 창조적인 인재들을 유입하기 위해서는 지역의 문화적 포용력도 높아져야 할 것이다.
/김문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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