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10년간 칼을 가는 중국의 과학기술 정치
양자컴퓨터 등 24개 품목의 수출통제 조치, 중국산 부품의 커넥티드차량 금지 등 미국의 대중국 첨단기술 통제 조치가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미국의 첨단기술 통제 조치가 그 범위와 강도를 높여가는 상황에서 중국의 과학기술강국 목표는 달성될 수 있을까? '개방적 혁신(open innovation)'의 제약 속에서 공산당 영도의 과학기술 혁신은 성공할 수 있을까?
2024년 6월 전국과학기술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중국 과학기술강국 목표 달성 시점인 2035년까지 불과 1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10년간 칼을 가는(十年磨一剑)' 확고한 결심과 끈질긴 의지로 매일매일 분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앙과학기술위원회 부위원장인 딩쉐샹도 7월 천진슈퍼컴퓨팅센터, 산업생명공학연구소 등을 방문한 자리에서 '10년간 칼을 가는 확고한 의지'로 고도의 과학기술 자립자강 실현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2023년 시진핑 주석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중앙과학기술위원회를 신설하고, 전략기술 육성을 위한 전정부적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저장성 등 성급 지방정부에도 성장과 당서기가 직접 위원장을 맡는 과학기술위원회가 속속 가동되고 있다.
중국의 당주도 과학기술 혁신 구조는 중국공산당 권력구조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중앙과기위원회 부위원장인 딩쉐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은 상하이재료연구소에서 20년 가까이 재직한 바 있다. 중국공산당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25명 중 6명이 중국우주과기공사 사장, 중국상업항공공사 사장, 국방과기공업국 국장, 중국병기공업공사 사장, 칭화대 총장, 국가원자력안전국 국장, 중앙군민융합위 부주임 등을 역임한 우주, 원자력, 군사기술 분야 전문가들이다. 중국공산당 지도부의 과학기술 중심은 블록체인, 인공지능, 과학기술 자립자강 등을 주제로 공부하는 중국공산당 정치국 집체학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호주전략정책연구소(ASPI)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이 64개 첨단기술 연구 중 57개에서 선두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드론, 위성, 협동로봇 등 국방 관련 독점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여전히 핵심부품에 대한 대외의존도가 높긴 하나, 중국은 향후 10년간 핵심기술의 국산화에 주력하고 있다. 중국이 5월 발표한 3단계 중국반도체산업발전기금은 이전 두 단계를 합친 것보다 많은 64조 원 규모이고, 업계 투자도 282조 규모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지난 9월 중국국가전력투자그룹 산하 기업인 허리촹신이 중국 반도체산업망의 중요한 누락 고리인 이온주입장비의 100% 국산화 토대를 마련하였다고 발표하는 등 중국은 자립자강의 성과들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의 핵심기술 돌파와 과학기술 자립자강의 구호는 '과학기술 애국주의' 담론과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서구의 대중 견제가 강화되는 추세 속에서 중국공산당은 청년 과학자들에게 '10년간 칼을 가는' 분투의 노력을 당부하고 있다. 지난 7월 시진핑 주석은 장쑤성 시찰에서 젊은 R&D 인력들에게 10년 동안 칼을 가는 집념과 끈기를 발휘하라고 당부한 바 있다. 중국은 지난 6월 과학상 수상대회에서도 당 중앙에 단결하는 애국적 과학자의 적극적 장려를 강조하였다. 10월 1일 중국 건국 75주년의 최대 화두 또한 '애국주의'다. 미·중 경쟁 속에서 과학기술 애국주의, 과학기술 민족주의의 부상은 중국 과학기술 정치의 주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중국의 칼을 가는 결심의 시기는 앞으로 10년이다. 세계 주요국들 또한 앞으로 10년이 세계 질서와 자국의 미래에 결정적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22년 미국 국가안보전략서는 앞으로 10년이 핵심 신흥기술이 경제와 군사력을 변화시키고, 세계를 재구성하는 시기라고 강조한다. 중국은 과학기술 혁신으로 대전환이 일어날 이 10년 안에 핵심기술을 돌파하며 과학기술 자립자강을 달성하고자 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중국의 정치가 기술혁신과 자립자강에 체제의 정통성과 국가안보를 걸고, 미국이 첨단기술 우위에 패권의 명운을 걸고 있는 결정적 시기이다. 인도가 반도체강국을 목표로 뛰어들고, 유럽이 기술주권 로드맵을 구체화하면서 혁신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모두가 과학기술 혁신에 정치와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는 10년, 그 이후 국제질서의 변화와 한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손자병법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 사고'는 형세와 힘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다. 과학기술 관련 위원회가 많아지고 회의체가 늘어나는 것을 넘어 국제환경에 대한 명확한 이해와 한국의 역량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토대로, 민주적 정치리더십의 전략적 사고와 혁신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보다 나은 혁신 거버넌스와 기술, 인재, 산업 등 전방위 투자를 촉진하는 '한국의 결정적 10년'을 기대한다.
/차정미 국회미래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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