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미래칼럼] 누구를 위한 탄소세 도입인가?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 목표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 과소보호금지 원칙에 위배돼 국민의 환경권을 비롯한 기본권 침해라고 보고 탄소중립법 8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때 과소보호금지 원칙이란 국민 기본권 보호를 위해 헌법이 요구하는 최소 수준 이상의 보호 조치를 마련해야한다는 사회적 기본권 영역의 원칙이다. 따라서 헌법재판소는 이번 판결을 통해 현재는 적절하고 효율적인 최소한의 기후보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고 시사하며 사실상 현 정부에 탄소중립을 현실화할 것을 촉구했다.
이처럼 탄소감축 시급성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면서, '어떻게' 탄소를 감축할 것인가라는 물음표가 떠올랐다. 헌법재판소가 현재의 기후보호 조치가 미흡하다고 판단한 바와 같이, 작금의 탄소배출권 제도는 실효성을 발휘하고 있지 않다. 실제로 2023년 12월 한국금융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배출권 거래제도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73%를 담당하는 대표 정책임에도 불구,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더불어 환경부가 제출한 기업별 탄소배출권 할달량 및 실제 배출량 분석에 따르면 2021년~2022년 2년간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배출권을 판매한 상위 10개 기업이 3021억원의 이익을 얻었으나, 이 판매량이 높았던 기업들이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이었다는 점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즉, 배출권 거래제가 탄소감축의 유인책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국, 스위스를 포함한 유럽 16개국이 시행 중인 탄소세가 새로운 탄소감축 유인책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은 차치하더라도, EU의 탄소국경제도 도입이 사실상 확실시되어 탄소세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21대 국회에서 탄소세 도입 발의안이 논의된 바 있었으며, 최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탄소세법 발의 계획을 밝히면서 22대 국회에서 탄소세는 더 큰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탄소세에 박차를 가하는 지금, 청년세대 한 사람으로서 고삐를 잡으려한다. 탄소감축에 따른 탄소세 도입에 정작 '국민'이 빠져 있지는 않은가? 미래세대를 위한다는 말로 경기 침체와 물가 폭등이라는 부정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제 경제활동을 시작한 청년들이 기후정의에 희생되는 것 아니겠는가.
필수재란 삶을 영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해서, 가격이 오르거나 내려도 수요가 쉽게 변동하지 않는 재화이다. 필수재는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가격과 상관없이 소비를 해야만 하므로, 필수재 가격 상승은 필연적으로 생계 부담을 가중시키고 다른 소비를 줄이도록 유도한다. 특히 필수재 가격이 심각하게 인상하면 저소득층은 소비 자체가 어려워져 생존에도 큰 위협이 된다.
따라서 국가가 필수재에 조세하여 가격이 상승하면, 그에 비례하여 국민의 행복권과 생존권이 침해된다. 예를 들어 콜라에 조세를 한다고 생존권에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생수에 조세를 많이 할수록 국민은 생존을 위해 물을 소비해야만 하므로 그만큼 생계 부담이 가중되고 저소득층 생계에 위협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필수재를 면세함으로써 조세가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가령 필수적인 의식주 관련 재화, 가령 '쌀, 밀가루, 식용유, 생수, 연탄'이나 교통권 관련 재화인 대중교통을 면세하고 있다.
문제는 탄소가 필수재에 속하는 재원이라는 것이다. 탄소는 전기, 수도, 가스, 연탄 등 모든 에너지 재원을 포괄하는데, 대체 에너지에 대한 선택권이 없는 국가에서 탄소세가 부과되면 에너지 비용이 심각하게 상승한다. 실제로 에너지는 가격이 올라도 수요에는 변동이 크지 않은 필수재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2021년 이후 전기요금 인상률이 44%에 달했지만 전기 사용량은 줄기는커녕 더 증가했고, 되려 납부되지 않은 전기요금 체납액이 늘어날 뿐이었다.
국가가 탄소세를 부과해 에너지라는 필수재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국민의 에너지 기본권을 훼손하여 인간답게 살 권리와 빈곤층의 생존권까지도 위협할 여지가 있다. 탄소세가 부과되면 중산층의 생계비 중 에너지 요금 비중이 상승해 소비가 줄어들고, 자영업자들은 소비위축과 전기요금 부담에 폐업을 하는 등 경기침체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탄소는 사치재가 아닌 필수재로서 저소득층에게는 더 치명적인 역진성마저 지닌다. 에너지 요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계층은 연탄으로 회귀하거나 아예 에너지를 사용할 권리를 박탈당할 수 있다. 한국사회보장정보원이 신영대 의원실에 제출한 '에너지 취약계층 발굴 현황'에 따르면 2022년 1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3개월간 에너지 취약계층은 약 5만4000명 존재했다. 이 중 전기료를 납부하지 못한 체납자만 4만 명이었으며, 전기와 가스가 끊긴 인구도 1만2000명에 달했다.
에너지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빈곤층, 경기침체로 힘들어질 서민들에 대한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탄소세를 도입하는 것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까? 유럽에서 이러한 문제제기가 되지 않았던 것은 이미 전력생산 중 50%가 재생에너지로 충당되기 때문에 막상 민생에는 큰 영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채 9%밖에 되지 않는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탄소세만 도입하면 서민은 영문도 모른 채 그저 소비할 수밖에 없는 탄소세를 떠안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은 철강, 반도체 등 제조업 비중이 GDP 대비 30%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편이다. 문제는 이러한 제조업 분야가 온실가스 배출량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탄소 집약적 산업 구조라는 점이다.
탄소세를 도입하면 포스코는 영업이익의 75%를 탄소세로 납세해야 하고, 배출량 상위 100개 기업 중 40개 이상은 영업이익보다 납부 탄소세가 더욱 커지게 된다. 대기업도 피해가 막중하지만, 고탄소 업종의 9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은 대부분이 폐업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영업이익보다 세금이 더 높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형국이 과연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탄소세로 탄소국경세에 대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탄소국경세라는 유럽 정책에 맞추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는 걸까? 탄소국경세는 탄소제국주의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EU가 중국 제조업에 비해 자국 경쟁력이 낮아지는 것에 대비해 탄소감축이라는 대의를 명목으로 보호무역을 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 따라서 시행 여부가 명확치도 않은 탄소국경세를 대비해 탄소세를 도입하는 것은 주객전도이다.
실제로 2021년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EU 수석부집행위원장, OECD 사무총장과 만나 EU가 추진 중인 CBAM이 일방적인 무역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향후 법안 처리 등 제도 입법 과정에서 한국 정부와 긴밀히 협의해줄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안 본부장은 "각국 기후정책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국제 공조와 정책 협력을 강화할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한 바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도 “한국은 EU와 마찬가지로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는 만큼 CBAM 적용 면제국으로 지정돼야 한다”며 탄소국경세제도에 있어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처럼 탄소국경세는 보호무역의 일환으로 작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이 ETS 탄소배출권 제도 시행국임에 따라 탄소국경세의 산업 영향 또한 부풀려진 것보다는 덜할 수 있다는 시각도 나온다. EU의 ETS 가격을 바탕으로 CBAM 인증서 가격을 책정하기로 했으므로 EU와 큰 차이없는 가격으로 ETS를 운영해온 한국은 중국 등 탄소배출이 많은 타국가보다는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탄소세를 섣불리 도입해 이중부담을 지우기보다는, 점층적으로 탄소 중립을 이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더욱 합당할 것으로 보인다.
탄소 감축이라는 대의를 위해 국민이 희생된다면 그야말로 국익을 배반하는 배임행위라고 생각한다. 만약 탄소감축이란 대의를 위해 탄소세를 도입할 것이라면 다음 3가지를 고려할 것을 대한민국 청년으로서 강력히 촉구한다.
1. 국민의 에너지 기본권 침해를 최소화해야한다
저소득층일수록 더 큰 피해를 받는 역진성을 지닌 탄소세, 하지만 탄소 배출은 담배나 주류와 같이 국민에게 제한을 걸 정당성이 없다. 따라서 에너지 빈곤층이 점차적으로 사라질 수 있도록 에너지 바우처 형성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하며, 전기요금 상승이 급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관리해야 할 것이다.
2. 국내산업 침체로 인한 경기 침체를 막을 방안을 제시하라
이미 제조업 종사자만 450만 명이 넘는다. 탄소세를 무턱대고 도입하면 제조업 종사자들이 실직 위기에 놓일 것이며, 많은 청년들의 취업에 위기가 생기는 것 또한 자명한 수순이다. 더불어 탄소세를 감당하기 위해 제조업은 상품 가격을 상승시켜 그를 충당하려 할 것이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올 것이다. 탄소 감축이 국내 산업을 공격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3. 재생에너지 발전에 공격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탄소세로 탄소 감축을 강요하기 전에, 선택할 대안부터 제공해야한다. 유럽 국가들은 탄소가 아닌 재생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었기에 기업도 그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도, 기업도 선택할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탄소만 감축하라 하는 것은 허리띠를 졸라매라는 강요밖에 되지 않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는 EU의 내연기관 차량 판매 중단 및 화석연료규제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으며, 특히 폴란드는 EU법원을 통해 해당 규제에 대해 항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탄소세의 긍정적 선례로 언급되었던 스웨덴에서는 2024년 예산안에서 환경 예산을 약 31억 삭감한다고 밝혔으며, 민생 악화로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유류세 감면과 탄소를 1톤 이상 배출하는 글로벌 기업 면세라는 역행적 정책까지 시행하고 있다.
헌법재판소까지 기본권 수호를 위해 인정한 탄소중립이라는 전지구적 목표에 대해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또한 앞으로 미래를 살아갈 청년으로서 탄소 중심 에너지 소비를 축소하고 친환경 재생 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탄소감축이라는 대의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면 사각지대에 있는 국민이나 국내산업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길 바란다. 탄소감축이라는 대의만 좇다가 미래세대 청년만 희생을 강요당하는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김윤조 24년도 국회미래연구원 청년미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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