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이 건넨 귓속말은…'독대 재요청 공개'만 허락받은 빈손 만찬
건배사·인사말 없이 국감·체코 원전 대화로 90분
윤 대통령에게 "감기 괜찮나" 질문 외엔 묵묵부답
- 이비슬 기자
"대통령님과 현안을 논의할 자리를 잡아달라"
(서울=뉴스1) 이비슬 기자 =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24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만찬을 마친 뒤 주차장으로 이동하며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이같은 귓속말을 전했다.
두 달만의 공식 회동을 통해 윤 대통령과 1시간 30분 동안 대면했지만 의료대란 해법과 김건희 여사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한 채 식사 자리가 끝나자 대통령과의 독대를 다시 요청한 것이다.
건배사도 인사말도 없이 시작한 만찬은 10월 국정감사와 여소야대 국회에 대한 윤 대통령의 격려로 채워졌다. 한 대표의 독대 제안과 대통령실의 거절 여파로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도 할 말을 못 할 상황은 아니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25일 김재원·장동혁·김종혁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라디오 인터뷰 등을 통해 언급한 전날 만찬 분위기에 따르면 윤 대통령과 한 대표 사이 민감한 현안을 논의하는 대화는 한 차례도 없었다. 만찬 종료 직후 한 대표는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에게 독대를 다시 요청했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이날 MBC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만찬이 끝나고 '독대 요청을 다시 했다'고 보도가 나왔길래 정무수석에게 물었다. '아까 내 앞에서 귓속말하던데 그때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까' 하니까 '맞다'고 그러더라"고 했다.
귓속말은 윤 대통령이 만찬 장소를 떠난 직후 이뤄졌다. 당 관계자에 따르면 한 대표는 홍 정무수석에게 독대를 재요청한 사실까지도 언론에 알리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홍 정무수석은 한 대표에게 '알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원래는 대통령이 '다른 분들 다 가는 것을 보고 내가 가겠다'고 했는데 참모들이 '먼저 가시죠'라고 해서 먼저 가셨다"며 "한 대표는 아무런 이야기도 못 했는데 밥만 먹고 왔다는 비판을 들을 수 있으니 정무수석에게 자리를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앞서 이번 만찬 직전 한 대표가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한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자 대통령실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한 차례 거절했다. 당에서 이례적으로 "의도적으로 사전 노출한 바 없었다"고 해명하며 논란이 불거졌던 만큼 이같은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전날 만찬은 청사 앞 용산어린이정원 내 분수정원에서 오후 6시 30분부터 시작해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됐다. 한 대표는 만찬 예정 시각보다 약 20분 이른 오후 6시 7분쯤 도착했고 윤 대통령은 6시 30분에 분수정원에 도착했다.
김종혁 최고위원은 "한 대표는 대통령이 좀 일찍 오셔서 '한 대표 나하고 잠깐 이야기합시다' 이런 상황이 있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 같다"며 "끝나고 나서도 한 대표는 혹시라도 대통령이 '봅시다' 해서 이야기를 할 것이라 기대를 했던 것 같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 전 "우리 한 대표가 고기를 좋아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맞은편에 앉은 한 대표는 식사 도중 "대통령님 감기 기운이 있으신데 차가운 것 드셔도 괜찮으십니까"라고 말한 사실 외에는 별도의 개인 발언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를 향해 웃으며 "뜨거운 것보다는 차가운 음료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만찬주는 술을 마시지 않는 한 대표를 고려해 오미자차가 준비됐다. 건배사는 없었다. 장동혁 최고위원은 SBS와 인터뷰에서 "국정감사 일정에 대해서 말씀하신 분이 있었다"며 "대통령께서 원전이나 체코 순방에 대한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말씀을 추가하신 분들이 있고 최근 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중점 법안 한두 가지에 대해 정부의 협조를 당부하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만찬 자리에서 10월 국정감사와 참석자들의 상임위원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 사고부터 체코 원전 기술과 한국의 원전 생태계에 이르기까지 원전 문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엿봤다고 한다.
김재원 최고위원은 "(만찬이) 의료 개혁 문제로 한 차례 연기됐고 한 대표의 독대 요구 이런 것이 (반복)되면서 밥 먹는 자리가 처음부터 굉장히 불편했다"면서도 "한 대표께서도 대통령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있었다. 말도 못 하게 막는 분위기였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발언을 하려고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한 대표 스스로 이 자리에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 거 아닌가"라며 "출범을 축하하고 식사 한번 하자는 정도의 자리였기 때문에 (한 대표가) 거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만찬에는 한 대표와 추 원내대표를 비롯해 장동혁·김재원·인요한·김민전·김종혁·진종오 최고위원, 김상훈 정책위의장, 서범수 사무총장, 배준영 원내수석부대표, 곽규택·한지아 수석대변인, 정희용 원내대표비서실장 등 주요 당직자가 참석했다.
박정하 비서실장과 신동욱 원내수석대변인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현안 질의로 불참했다.
대통령실에서는 정진석 비서실장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성태윤 정책실장을 포함해 수석급 이상 참모진이 자리했다.
친윤석열계 김재원 최고위원은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한 것이 보도되면 안 되는 사실이냐'고 반문한 데 대해서는 "들어주기 어려운 이야기를 많이 꺼내놓으면 '내가 이야기는 충분히 했는데 영 귀를 닫고 있더라' 이래서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상황이 되지 않느냐"며 "만약 수용했다면 '대통령이 한동훈 대표에게 굴복했다' 이런 프레임을 씌울 수가 있다.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국면으로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친한동훈계 장동혁 최고위원은 "어려운 상황을 예측하고 당대표가 된 만큼 힘들지만 지금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해야 한다"며 "독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두세 번이라도 독대 요청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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