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 당대표실이 보수 유튜버에게 준 출입증 [기자의 눈]
- 신윤하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 최근 정치권에 '팬덤'이 유행이다. 인기 있는 정치인들에게는 든든한 아군이자 후원자다. 팬덤을 표방하는 이들은 여야 유력 정치인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이며 이들의 언행 하나하나에 환호를 보낸다.
팬덤 활동이 새로운 정치 현상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장점이 없지 않다. 국민들에게 냉소와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정치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 역시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무조건적 지지와 그 반대급부인 무조건적 배척, 증오의 발산이다.
정치 팬덤들이 늘면서 이를 타깃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정보 전달자인 '크리에이터'들도 덩달아 늘어났다. 이른바 '유튜버'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팬덤 또는 지지층이 듣고 싶은 말과 주관적 해석을 쏟아내며 구독자를 늘린다. 취재현장에서 마주하는 이들의 증가 속도는 최근 몇년 사이 가히 '기하급수적'이라고 할 만큼 팽창했다. 양적 팽장 뿐 아니라 취재 양태와 보도 내용은 갈수록 극성스러워지고 있다.
유력 정치인의 현장 행보에 유튜버들이 몰리는 것은 흔한 풍경이 됐다. 정치인들은 이를 즐기면서도 때론 성가시게 생각한다. 야당 대표가 흉기에 습격당하고, 여당의 전당대회는 폭력 사태로 얼룩지기도 했다.
안전 문제와 함께 정치인들의 현실 인식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를 자아낸다. 정치 유튜버들이 열광할수록 공당의 귀엔 듣기 좋은 꽃노래만 들리고, 일부 목소리가 과다하게 반영돼 정당 정치가 후퇴할 수 있다.
지난 12일 보수 팬덤층이 탄탄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경기 안성시 추석 성수품 출하 현장을 방문했다. 모든 기자가 취재 현장을 오갈 수 없는 상황이라 취재진도 약속된 소수만 현장에 들어가기로 했다.
특이한 점은 취재기자도 2명만 들어간 한 대표의 현장 행보에 보수 유튜버들이 동행했다는 것이다. 평소 한 대표를 지지·옹호하는 유튜브 영상을 다수 제작해 온 유튜버들이라고 한다. 당대표실 직원은 "잘 부탁드린다"며 인사했고, 유튜버들은 국민의힘의 안내를 받으며 현장에서 생중계를 진행했다.
당대표실 직원은 최근접 취재 현장까지 들어가려는 유튜버를 막아서는 국민의힘 당직자에게 "1층까지는 된다고 했다"고 반박했다. 유튜버는 당대표실 직원에게 "죄송한데 (출입증) 하나만 더. (다른 유튜버도) 오셔서"라며 추가 출입증을 요구하기도 했다. 지난 2년여간 국민의힘을 취재하면서 당대표실이 유튜버에게 취재 현장 출입증을 준 건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강성 정치 유튜버들을 챙기던 2019년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오버랩됐다. 그는 보수 유튜버들에게 출입 기자들과 동일한 취재·자격을 부여하자고 제안해 논란을 부른 바 있다. 꽃노래에 귀 기울이고 쓴 소리에 귀 닫는 모습을 보인 황 전 대표는 이듬해인 2020년 총선에서 참패하고 정치 일선에서 쓸쓸히 퇴장했다.
국민의힘이 총선에서 패배한 지 5개월이 지났다. 집권여당이 300석 중 108석이란 압도적 열세에 처한 적은 헌정사에서도 기록적이다. 냉엄한 심판을 받은 여당과 한 대표는 중수청(중도층·수도권·청년)을 외치며 중도외연 확장에 골몰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 유튜버들에게 출입증을 내주는 당대표실에게선 절박함이 느껴지진 않았다. 유튜버들의 활동을 인위적으로 막을 필요까진 없지만 당대표의 공식 일정에 근접취재를 소수의 특정 유튜버에게만 허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언론관은 매체에 공평한 취재 기회를 부여하고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포용력이다. 매체별 호불호가 아닌 매체가 갖는 공공선, 즉 동료시민의 이익에 복무하는 지 따져보는 판단력으로 언론정책을 세워야 한다. 보수 유튜버들에게 최근접 취재를 허용하는 당대표실의 결정에 이런 진지한 고민이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당에서 잔뼈가 굵은 당직자들 사이에선 지난 총선 국면부터 '황교안 시즌2'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에만 귀를 열면 민심과는 그만큼 멀어진다는 취지이다.
정치에 영원한 것은 없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당심과 민심 모두에게서 62% 넘는 지지를 받은 한 대표이지만 정치 팬덤을 어떻게 다룰지는 큰 숙제로 다가온다. 아슬아슬한 당정관계, 강력한 야당과 맞서야 하는 한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보수 유튜버의 '묻지마 식' 지지가 아닌 '동료시민'의 탄탄한 응원이다. 황교안 전 대표를 칭송하던 그 많은 유튜버는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 되짚어 볼 시점이다.
sinjenny9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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