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국가 위기의 그림자, 도시경쟁력에서 그 해답을 찾다
국가 위기의 그림자는 고령화를 거쳐 저출생의 위기까지 와닿았다. 청년실업, 양극화 심화, 장시간 노동, 가족해체, 과도한 사교육비 등 민생과제를 함축하며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12년 전 대선에서 등장했다. 안타까운 것은 이 슬로건을 지금 선거에 사용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우리를 둘러싼 문제는 해소되지도, 변한 것도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더욱 심각해졌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최근 OECD 통계에 비추어보면 대한민국의 출산율과 평균 수면시간은 38개국 중 꼴찌에 머물러 있고, 노인빈곤율과 자살률은 38개국 중 1위로 불명예 자리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행복지수와 아동 삶 만족도도 35위와 31위로 최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이러한 위기의 그림자는 소멸이라는 벼랑 끝으로 각 도시를 내몰며 더 짙게 머물러 있다. 다행히도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많은 선배‧동료의원들이 도시 소멸을 막아내고자 입법 활동, 정책 마련, 예산 편성에 고군분투 중이며, 그곳이 바로 여기 국회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도시 그 자체가 노후화되어 간다는 데 있다. 대한민국 도시의 역사는 1960년대 판자촌에서 시작됐다. 산업화를 이룬 1990년대에는 뉴타운으로 변모하며 도시의 성장시대가 본격 도래했으나, 이후 도시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서고 변화하지 못한 원도심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결국 2024년 지금의 도시들은 제각각의 이유로 소멸과 번영의 기로에 서 있다.
이를 앞서본 것일까.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 그중에서도 도쿄에서는 대개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큰 규모의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동 인구가 많기로 소문난 도쿄 신주쿠역에 위치한 오다큐 백화점의 철거는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고, 근처에 있는 게이오 백화점도 철거가 시작된다.
추진되고 있는 재개발의 모습들은 초고층 건물이 잇따라 들어서는 도쿄로 바꿔 놓고 있고, 도쿄 지요다구에 문을 연 모리JP타워는 높이가 330미터로 옆에 자리하고 있는 도쿄타워와 비슷한 높이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대규모 재개발은 제2의 도시 오사카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3년 전 오사카시는 부와 공동으로 재개발을 추진할 오사카 도시계획국을 신설했다. 새로운 도시의 오사카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대표 도시들이 도심 재개발을 추진하는 이유는 도시가 수명이 다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고도 경제 성장과 거품 경제기에 지어져 도심의 상징이라 불렸던 건물들은 현재 반세기 이상이 지났다. 이후 동일본대지진까지 거치면서 대형지진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도 도심 재개발을 재촉하는 데 영향을 주고 있다.
이는 신도시를 통한 수평적 확장을 이루려는 우리나라와 사뭇 다르다. 신도시 확장은 저밀도 개발방식으로 주거환경이 자연 친화적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핵심단점은 '출퇴근 시간'이다. 도심에 집중되어 있는 직장환경을 변화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교통체증'과 '지옥철'에 자신의 시간과 체력을 빼앗기고 마는 불편한 도시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과거 일본 도쿄는 이러한 문제를 이미 마주했다. 신도시 개발이 가지고 있는 단점에 주민 고령화가 더해졌다. 재개발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신도시의 부동산값은 하락세를 보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희망으로 가득했던 새로운 인구 유입은 온데간데없이 유령의 도시라는 상처만 남겼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고려해 최근 선진국들도 신도시 개발을 이미 중지했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됨에 따라 도쿄를 비롯하여 뉴욕과 런던,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들은 글로벌과 디지털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도심 재개발을 통한 수직적 확장을 이루는 데 집중하고 있다. 콤팩트 시티(Compact City)를 구현하는 고밀도‧초고층 도심재생 사업으로 주거와 상업‧업무‧문화 등이 어우러진 도시 문화를 형성하여 도시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결국 도시 자체도 변화해야 한다. 우선 도시 간 유기성을 높이고, 흩어진 도시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 촘촘한 도시를 만들어 정체성을 되찾을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가 모이면 글로벌시대에 경쟁력을 갖춘 국가를 탄생시키는 일이 된다.
도시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지금 우리가 시작해야 하는 일은, 잘못된 개발로 인해 발생하게 된 사회‧경제‧환경 문제를 최소화하는 대안적, 그리고 미래적 도시 모델을 구축하는 것이다. 기존 지역 커뮤니티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커뮤니티가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드는 일, 친환경 교통수단을 중심으로 대중교통 체계를 혁신하는 일, 단순한 건물개발이 아닌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복합도시를 계획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 세 요소의 중심에는 '연결'이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도심과 도심을 잇고, 자연과 사람과 도심을 잇는다. 결국 새로운 도시 모델에서 고려해야 하는 것은 각 도시가 가지고 있는 가치, 그리고 그 가치들 간의 유기성이다.
유기성을 갖춘 도시에 산다면 어떨까. 출퇴근 지옥에서 벗어나 저녁이 있는 여유로운 삶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크다. 여유로운 삶은 결혼을 꿈꾸게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도심으로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서로 간의 자유롭고 활발한 교류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산업이 탄생하는 도시의 기반이 될 수도 있다.
국가의 경제 활력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 지금, 새로운 시대 담론을 담아내고 세계의 기준에 맞는 새로운 도시 모델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 선제적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방향키를 쥔 국회야말로 우리 도시들이 잠재적 국가경쟁력을 일깨워주고 이끌어가는 리더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국제도시 간 경쟁의 시대다. 그 경쟁에서 도쿄가 이기지 않으면 일본의 미래는 없다고 말해왔다." 지난 20여 년간 도쿄의 낡은 도심 재개발을 주도한 모리빌딩의 최고경영자인 쓰진 신고의 말이다. 더 늦기 전에 우리도 이 말을 뼈아프게 새겨야 할 때다.
/곽규택 국민의힘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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