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미래칼럼] 청년 목소리 없는 정책은 청년정책이 아니다

ⓒ News1 양혜림 디자이너

2020년 청년기본법이 제정된 후 정부와 지자체에서 청년을 위한 정책들을 만들어냈다. ‘청년 정책' ‘청년위원회' ‘청년도약계좌'와 같이 정책 앞에 '청년'이 흔히 붙어있다. 청년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이해가 높아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청년의 이름만큼 청년의 목소리가 대표되진 않는다. 오히려 청년의 이름으로 왜곡된 목소리가 이 사회를 메우기도 한다.

한국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고도성장을 이룩했다. 경제가 발전하며 사회는 정교하고 복잡하게 분화되었고, 그 속에서 청년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있다.

청년의 생애를 들여다보자. 한국인 기대수명은 84.6세이다. 청년은 길어진 기대수명에 생애소득을 계산하고 자신의 소득, 소비, 저축을 계획한다. 하지만 고학력·고스펙 경쟁에 취업 준비기간은 길어졌으며, 평균 퇴직 연령은 49.3세로 근로소득을 얻을 기간은 짧아졌다. 2024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한국경제보고서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높은 임금 격차를 지적했듯이 짧은 기간에 높은 소득을 얻기 위해서는 대기업으로 취업해야 한다.

그러나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300명 이상 대기업 임금근로자는 18%에 불과하다. 청년은 18%에서 열릴 비좁은 채용시장을 뚫어야 한다. 채용시장에서는 중고신입을 선호한다. 한편 또 다른 청년들은 연금을 위해 공무원 시험으로 눈을 돌린다.

우리나라는 실업률이 2.8%로 완전고용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원하는 취업을 했거나 중소기업으로 갔다는 말은 아니다. 2024년 통계청 경제활동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도 구직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15~29세 청년인구가 39만여 명으로 코로나 당시 46만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완전경쟁 대한민국에서 청년의 목소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이처럼 청년은 극단적으로 불안정하고 두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청년들은 갈림길에 섰다. 경제학자 알버트 O. 허쉬만의 책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에서 이탈, 항의, 충성의 개념은 요즘 청년의 삶을 잘 설명해 준다.

첫째, MZ로 불리는 청년의 목소리는 주로 이탈의 목소리이다. 청년은 손익계산이 빠르다. 나밖에 모르는 것 같지만 실은 삶이 각박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봤자 바뀌겠냐’는 냉소적인 분위기도 청년들을 더욱 이탈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므로 청년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항의가 아닌 이탈의 목소리를 취한다.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포기뿐만 아니라 고립·은둔 청년의 증가도 같은 맥락이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이자, 합계출산율 0.72명으로 출산율 최하위 국가를 알리는 지표까지 모두 청년들이 한국을 떠나거나, 재생산하지 않겠다는 이탈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둘째, 청년들은 공정성 문제에 항의한다. 치열한 경쟁교육과 처절한 냉소주의를 몸소 익힌 청년에겐 공정성만이 희망이다. 나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모두가 평등하게 경쟁하길 요구한다. 그러니 정치인 자녀의 입시·채용 특혜와 비리, 재산 증식을 위한 투기에 청년들은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청년의 항의는 단조롭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불평등을 알아도 항의하지 않는다. 청년들의 장밋빛 미래는 본인의 취업과 생존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청년의 소극적 항의는 기성 체제를 전복하기보다는 경쟁을 정당화시키는 기제로 작동되기도 한다. 이는 충성의 개념과도 이어진다.

셋째, ‘한강의 기적’이란 기성의 성공신화에 충성을 다하는 목소리가 있다. 건강한 사회라면 충성은 필요하다. 그러나 청년의 충성은 성공신화에 동조하는 목소리이다. ‘청년 전세 대출 제도’가 한 예이다. 일반적으로 청년들이 돈이 없어 전세를 못 구하면 전세 수요가 줄고, 전세 가격이 떨어진다. 그러나 충성하는 청년들은 문제제기보다는 대출 제안을 수용한다. 노력하면 대출받아 집을 구하고, 또 노력하면 자가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실상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기성세대는 청년에게 전세금을 대출해주어 전세 수요를 높이고, 전세 가격을 올려 주택 경쟁을 한껏 즐기고 있다. 기성에 충성한 청년들은 허황된 성공신화에 매달려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젊음은 푸르고 청춘은 투박해야 한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청년을 설명할 수 없다. 항의하지 못한 청년은 이탈하고, 이탈한 청년은 공허하다. 청년을 청년이란 이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청년의 목소리다. 청년의 목소리 없는 정책은 청년정책이 아니다. 기성세대는 진정 청년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허황된 미래를 물려주는 것이 대한민국의 유산은 아니라고 응답해야 한다.

청년기본법 15조 ‘정책결정과정에 청년의 참여 확대’에 따라 정부·지자체에서 청년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청년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를 회복시킬 신호이다. 뒤틀린 노동시장과 투기의 장이 된 부동산 시장, 승자 없는 경쟁으로부터 건전한 사회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탈자와 항의자들의 목소리를 들어야만 한다. 부디 청년이란 이름을 동원하여 사진을 남기는 허울로 이용하지 말아 달라. 그리고 청년들의 이탈을 억제하고 항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더욱 귀 기울여달라.

기성세대는 표와 돈이 되지 않더라도 갈림길에 선 청년들의 목소리를 들어주기를, 그리고 청년들은 공허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지 않기를 빈다.

/김도현 24년도 국회미래연구원 청년미래위원회 위원(영남대 정치외교학과)

※청년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청년미래위원들의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