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업 팽개치고 정쟁에 날샌 21대…'구하라법' 등 민생법안 줄폐기

2만5857건 발의해 9086건 처리…법안 처리 35.1% '역대 최저'
채상병 특검에 '골든타임' 한달 간 공전…모성보호3법 등 휴지통

김진표 국회의장이 2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채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 재의의 건) 부결을 선언하고 있다. 채상병 특검법은 재석 의원 294명 중, 찬성 179표·반대 111표·무효 4표로 가결 정족수(196명)에 미달해 부결됐다. 2024.5.28/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신윤하 기자 = 마지막 본회의까지 극한 대치를 했던 21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법안 처리 오명을 쓰게됐다. '3건 중 1건 처리'라는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을 기록하며 막을 내린다. 구하라법, 모성보호3법 등 국민의 삶과 직결된 민생법안들도 여야 합의를 이루고도 정쟁 속에 폐기 수순을 밟는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은 총 2만5857건이다. 이 가운데 9478건만 국회에서 처리됐고, 1만6379건은 계류됐다. 계류된 법안들은 21대 국회 임기인 오는 30일이 지나면 자동 폐기된다.

국회에서 처리된 법안 중에도 부결·폐기·철회돼 최종적으로 법률에 반영되지 못한 법률안이 결국 자동 폐기될 것을 감안하면 21대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은 9086건에 그친다.

21대 국회 법안 처리율은 35.1%로 역대 최저치다. 법안 처리율은 18대 국회 44.4%(1만3913건 중 6178건), 19대 국회 41.7%(1만7822건 중 7429건), 20대 국회 36.4%(2만4141건 중 8799건)를 기록했다.

특히 여야 합의를 목전에 두고도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된 법안들이 줄폐기 수순을 밟는게 뼈아프다. 쟁점법안을 두고 충돌해 온 여야는 2월29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마지막으로 석달간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했다. 이 기간 법사위서 처리된 법안은 지난 2일 여야 합의로 처리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이 유일하다.

법사위로 채 넘어가지도 못하고 상임위에 묶여있는 법안도 산더미다. 소관 상임위를 거친 후 법사위에서 체계·자구 심사를 받고 본회의에 상정되는데, 각 상임위의 의무 방기도 심각하다.

역대 최악의 법안 처리율의 책임은 여야 모두에게 있지만, 집권여당인 국민의힘 역할에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가 많다. 채상병 특검법 방어에 집중하다보니 국회의 입법 기능을 사실상 정지시켰단 지적이 적지 않다.

국민의힘은 채상병 특검법을 단독 처리한 민주당에 대한 반발로 21대 국회 종료를 앞둔 '골든타임' 한 달여 간 상임위를 보이콧해왔다. 법사위뿐만 아니라 환경노동위원회 등 국회 상임위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비쟁점 법안에 대한 논의도 모두 멈춰섰다.

특히 부모가 양육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자녀의 유산을 상속받지 못하게 한 '구하라법'은 20대 국회에 이어 또다시 임기 만료로 폐기된 점은 여야 모두가 지탄을 받는 대목이다. 구하라법은 여야 이견이 없는 법안으로, 지난 7일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 전체회의가 열리지 않아 본회의에 오르지도 못했다.

온라인 법률 플랫폼이 대한변호사협회의 과도한 규제에서 벗어나게 하는 '로톡법'(변호사법 개정안), 재판 지연을 막기 위해 법관 정원을 지금보다 늘리게 한 법관증원법 개정안도 소관 상임위인 법사위에서 계류됐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선 원자력발전소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 핵연료의 영구 처분시설을 마련하기 위한 '고준위 방폐물 관리 특별법'도 여야 합의가 거의 이뤄졌지만 폐기된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및 영업 제한 기준 완화를 골자로 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도 산자위에 묶였다.

반도체 등 국가전략시설에 대한 투자액의 세액공제 기한을 올해 말에서 2030년까지 연장하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는 소관 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돼 폐기 수순을 밟는다.

부모 육아휴직을 최대 3년으로 확대하고 배우자 출산휴가 급여지급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모성보호 3법'(남녀고용평등법·고용보험법·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임금체불 방지법'은 환노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는 의료법 개정안과 진료보조(PA) 간호사 법제화를 담은 간호법 제정안 등도 복지위에 계류됐다.

이외에도 AI 산업 육성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인공지능(AI) 기본법, 현행 예금보험료율 한도(0.5%)의 적용 기한 연장을 내용으로 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도 상임위에서 계류된 채 폐기될 예정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바로 거대 야당인 민주당 때문에 각종 상임위 본회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했다"며 "그 책임은 오롯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져야 한다"고 말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처리되지 못한 법안들은 22대 국회에서 조속히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sinjenny9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