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63% 폐기·의원 88명 수사·재판'…21대 국회 최악 성적표
최장 지각 개원…헌정사 첫 장관 탄핵소추안 및 총리 해임안
대통령 시정연설 첫 전면 보이콧…마지막 본회의도 격돌 예상
-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21대 국회가 아흐레 뒤면 문을 닫는다. 원 구성 협상을 둘러싼 극한 대치로 1987년 민주화 개헌 이후 가장 늦게 문을 열었던 이번 국회는 마지막까지 야당의 법안 강행 처리→대통령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재표결에 따른 법안 폐기를 반복하며 역대 최악이라는 오명을 쓴 채 막을 내릴 전망이다.
21대 국회는 임기 시작 47일 만인 2020년 7월16일에야 개원식을 갖고 출발했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이 176석의 거대 여당으로 출범한 뒤 상임위원장 전석 독식을 주장하자 미래통합당이 보이콧을 하면서 대통령 시정연설도 한 달 이상 늦어졌다. 87년 체제 이후 18개 상임위원장을 특정 당이 모두 가져간 것은 처음이었다.
75년 헌정사 최초 기록도 줄줄이 써내려갔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무위원 탄핵소추안이 결의됐고, 국무총리 해임건의안도 국회 문턱을 넘었다. 2022년 대선 직후 '검수완박' 법안 통과에서부터 민주당은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 시정연설에선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면 보이콧 하는 불명예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신 본회의장 밖에서 이재명 대표 검찰 수사에 항의하는 방탄 피켓 시위를 벌였다.
21대 국회는 마지막까지 여야 간 정쟁으로 얼룩지게 됐다. 정치권에서는 오는 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고, 28일 본회의에서 재표결할 것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21대 국회 마지막 날에도 야당의 법안 강행처리와 대통령 거부권 행사, 재표결에 따른 법안 폐기가 10번째 반복될 전망이다.
여야가 정쟁에 골몰하는 사이 국회 본연의 임무인 입법 성적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21대 국회는 지난 4년간 2만 5840건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처리한 법안은 9455건에 그쳤다. 법안 통과율이 36.6%로, 발의됐던 법안 10건 가운데 6건 이상이 처리되지 못했다.
통상 총선 직후에 열리는 마지막 국회에서 밀린 민생법안을 합의처리해 왔지만, 이번 21대 국회에서는 채상병 특검법 등을 두고 마지막까지 극한 대치를 이어가고 있어 법안 처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 특별법과 예금자보호법, 구하라법, 위기임산부 지원 법안, 아동기본법 등 국회에서 계류 중인 법안 1만 6385건은 9일 뒤면 자동 폐기된다.
입법 성적뿐 아니라 도덕성도 낙제점이었다.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에 따르면, 지난 1월31일 기준 21대 전·현직 국회의원 중 88명(현직 77명 전직 11명)이 109개 사건에 연루돼 경찰과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가장 많은 사건으로 재판받고 있는 의원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등 4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였다.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국가 지도자가 아니라 직업으로서의 국회의원으로 전락한 수준"이라며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 나갈지 고민하고, 국민들을 다독일 수 있어야 하는데, 공천 때부터 이미 전과자·잡범이 수두룩하다"고 비판했다.
근본적으로 정치 풍토 자체가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보수와 진보 진영이 양극화되면서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고 증오하고 배제하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정치적 양극화'를 넘어서 '정서적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양극화가 최고조에 달했고, 생산성은 최저인 국회였다"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종되면서 양당이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발목만 잡으면서 엇박자만 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협치는 차치하더라도, 일단 여야가 만나서 대화라도 해야 하지 않겠나"고 했다.
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도 "역대급 최악의 국회였다"며 "더 큰 문제는 전반적인 정치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 교수는 "정치권의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다보니 보수와 진보가 상대를 파트너가 아닌 적으로 여기고 있고, 이제 정치가 누가 사느냐 죽느냐 일종의 서바이벌 게임이 됐다"고 진단했다.
22대 국회에서는 여야 대립이 더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 교수는 "벌써부터 야권에서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과 대통령 탄핵론이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다"며 "총칼만 안들었지 상대를 몰살시키려는 상황이 된 것"이고 전망했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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