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판이 바뀌다] 시대정신·비전·정책 '3무선거'…깡패·살인범 막말만
'尹 심판' vs '이·조 심판' 전면에…'개같이' 'XX' 등 비속어 남발도
선거법 위반 신고 접수만 2000여건…총선 공약은 폐기수순
- 노선웅 기자
(서울=뉴스1) 노선웅 기자 = 역대 최악의 네거티브라는 오명을 쓴 22대 총선은 한마디로 '3무 선거'였다. 어느 정당도 대한민국의 오늘을 관통할 만한 '시대정신'과 자신들이 주안점을 두고 있는 '가치와 비전' 그리고 '정책'을 유권자에게 설득력 있게 호소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총선 후 3주가 지난 지금 회자되는 건 유세 기간 남발한 막말과 서로를 향한 '심판론'뿐이다. 선거 때 내건 공약들 중 상당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정치적 우열만 뚜렷하게 남았다.
막말 논란에 휩싸인 후보들뿐 아니라 양당 대표들도 "깡패", "살인범" 등 거침없는 말을 쏟아내기 바빴고, 남은 건 각종 고소고발로 접수된 2000여 건의 선거법 위반 사건뿐이다. 이에 22대 국회도 21대 국회 초기 수십명의 당선인이 기소됐던 악연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
◇ 뚜렷한 시대정신 없이 '尹 심판 vs 이·조 심판'만 부각
큰 틀에서 이번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 구도가 그대로 이어진 만큼 '공정과 상식'이란 시대 정신도 그대로 유지됐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여야 모두 서로에 대한 '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공정과 상식에 관한 논의보단 비난전에 몰두했다는 지적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격차 해소'라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정작 선거가 다가올수록 민주당이 주도한 '윤석열 정권 심판론' 흐름에 말려 맞불 성격인 '운동권 척결'과 '이·조(이재명·조국) 심판론'을 꺼냈다. 이후 모든 선거 메시지도 윤 정권 심판과 이·조 심판으로 귀결되면서 애초 목표한 정책과 대안은 소멸했다는 평가다.
◇ 비속어·막말에 욕설까지 난무
선거가 뚜렷한 시대정신 없이 심판론으로 귀결되자 비속어와 막말, 욕설만 난무하는 '저질 선거'로 전락했다. 한 전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첫날부터 서울 서대문 신촌 유세 현장에서 "정치를 개 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인 거지, 정치 자체는 죄가 없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지난달 30일 경기 부천 유세에선 김준혁 수원정 후보를 겨냥해 "이런 쓰레기 같은 말이 용인할 수 있는 수준의 말인가. 삐 소리 나오는 말을 하는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지난 2일 충북 증평·진천·음성 지원 유세에선 "이재명과 조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자기들이 죄지어놓고 감옥 안 가겠다, 복수하게 해달라는 것"이라며 "이게 어떻게 정치의 명분일 수 있나. 깡패들도 그따위 명분은 내세우지 않는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도 서울 강남을 유세에서 "귀하다고, 이쁘다고 오냐오냐하면서 나쁜 짓 하고 심지어 다른 사람을 때리고, 훔치고 그런 것을 '아이고, 우리 자식이 귀하니까 '괜찮아'하면 살인범이 된다"며 윤석열 정권을 살인범에 빗대어 비판했다. 지난 3일 부산 사상 유세에선 '대파 논란'을 거론하며 "국민을 조작하면 조작되는 소위 XX로 아는 것 아닌가"라고 말해 비속어 논란이 일기도 했다.
◇ 선거법 위반 신고 접수만 2000여건…공약은 폐기처분 수순
이에 4·10 총선과 관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경에 접수된 사건만 2000여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은 765명을 입건하고 709명을 수사 중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1681명을 입건해 46명을 송치하고 불송치를 제외한 나머지 1468명은 계속 수사 중이다. 이는 21대 총선(1350명)과 비교했을 때 331명 늘어난 수치다.
선관위 고발과 검경 수사가 이어질 경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당선인만 27명에 달한 21대의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경기 안산시상록구선거관리위원회는 서울 서초구 아파트 재산 축소 신고 의혹이 제기된 양문석 민주당 양문석 당선인(경기 안산갑)을 경찰에 고발했다. 충북도선관위는 출판기념회 참석자들에게 마술 공연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기부행위를 한 혐의로 박덕흠 국민의힘 당선인(충북 보은·옥천·영동·괴산)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는 사이 정부·여당이 선거 기간에 추진을 약속한 공약 다수는 야권의 압승에 제동이 걸려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여당이 역점을 둬온 '금융투자세 폐지'의 경우 오는 7월 세법 개정안에 담길 것으로 보이나 야당의 반대로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다.
또 여당이 주도해 온 김포 서울 편입과 경기 분도 원샷법의 추진도 수도권 참패로 사실상 멈췄다. '국회의원 세비 중위소득 수준 조정'과 '국회의 세종시 완전 이전' 공약 등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반대가 많아 폐기될 위기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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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192 대 108이라는 숫자는 이 구도로 4년간 국민 뜻을 받들라는 명령이다. 선거 결과는 윤석열 정부 심판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미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이번 총선은 전통적 선거 공식이 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지형의 근본틀이 바뀌고 있다. 선거를 결정짓는 기본 토대는 이념, 세대, 지역이다. 더이상 20대를 진보로 단정할 수 없고 60대를 보수로 규정할 수 없다. 서울을 진보 우세로, 부산을 정통보수로 여기는 분석틀도 깨졌다. 온라인 시대가 30년이 지났고 유튜브가 대세가 된 22대 총선. 이전과 전혀 다른 그 변화의 지점들을 차례로 분석한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