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판이 바뀌다] 보수의 보루 산업화 세대의 퇴조
투표율 '상수' 산업화세대…청년 투표율 상승으로 영향력 ↓
산업화세대 자연감소·진보적 86세대 고령화…고령층 진보화
- 박기범 기자, 박종홍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박종홍 기자 = 4·10 총선은 진보세력의 압승으로 끝났다. 전체 300석 가운데 범진보세력은 189석의 압도적 의석을 확보했다.
보수세력인 현 여당은 108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중도보수를 표방하는 개혁신당의 3석을 보수로 분류하더라도 범진보와 범보수의 의석수는 189대 111로 78석이나 차이 난다.
이같은 보수 압승의 배경에는 그동안 보수지지층을 견인하던 산업화 세대의 영향력 감소와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 투표율 '상수' 산업화세대…청년 투표 확대로 영향력 ↓
산업화세대는 1940~1959년생을 뜻한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산업화 세대를 거친 세대로 현재 60대 중반이다. 이들은 보수적 유권자로 평가된다. 남북의 이념갈등, 산업화 시대 등 이들의 삶의 궤적과 부동산 등 청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축적된 재산 등은 보수성향을 강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들은 정치 고(高)관여층으로 그동안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며 각종 선거에서 '상수'로 작용했다. 2030 등 청년세대는 대체로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산업화 세대가 선거에서 결정적 영향력을 미쳤다.
여기에서 나온 선거공식이 바로 투표율이 높으면 진보가 승리한다는 것이다. 산업화 세대의 투표율을 상수로 놓고 청년층의 투표를 플러스 알파, 즉 변수로 보는 것이다.
투표율이 낮을 경우 상수인 산업화 세대의 표심이 강하게 반영됐다. 하지만, 최근 투표율이 상승하면서 이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최근 선거를 보면 전체 유권자 대비 산업화세대 비율은 큰 변화가 없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50~60대이던 산업화세대 비율은 전체 유권자 대비 20.4%를 기록했다.
세월이 흘러 산업화세대가 60~70대가 된 2020년 21대 총선에서 이들의 비율은 전체 유권자 대비 20.15%로 조사됐다. 60대 중반 이상이 된 21대 총선에서 이들의 비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전체 유권자에서 산업화세대 비율이 비슷하지만, 이들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으로 분석되는 근거는 투표율이다. '상수'인 이들 외에 다른 세대, 특히 젊은 층이 얼마나 투표했느냐에 따라 보수정치권의 성적표는 달라졌다.
역대 최저인 46.1%의 투표율을 기록한 18대 총선 결과, 당시 전체 299석 가운데 보수진영은 202석을 확보했다. 한나라당이 153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고, 자유선진당 18석, 친박연대 14석을 차지했다. 여기에 25명의 무소속 당선인 중 17명이 보수인사였다.
반면, 투표율 상승해 54.2%를 기록한 19대 총선에서 보수진영 157석(새누리당 152+자유선진당5)으로 140석(민주당 127+통합진보당13)의 진보진영과 백중세를 보였다.
투표율 58%를 기록한 20대 총선에서는 민주당이 123석으로 제1당이 됐다. 새누리당은 122석,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었다. 정의당은 6석이나 차지했다.
투표율이 60%를 넘어선 21대 총선(66.2%)에서는 민주당이 180석(민주당 163+시민당17)으로 압승했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은 10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정의당 6석, 국민의당 3석, 열린민주당 5석 등을 모두 포함하면 범진보진영 의석수는 190석에 육박했다.
투표율 67%를 기록하며 14대 총선 이후 3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이번 총선에서도 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등 범보수진영은 300석 가운데 189석을 차지했다. 국민의힘은 108석을 확보하는데 그쳤다. 중도보수 성향인 개혁신당의 3석을 포함하더라도 범보수진영은 11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상대적으로 투표율이 저조한 지방선거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난다. 투표율 56.8%를 기록한 제6회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의 경우 민주당 9곳, 새누리당 8곳을 차지했다. 반면 투표율 60.2%를 기록한 제7회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14곳, 자유한국당 2곳의 광역단체장을 차지했다.
가장 최근 선거로 50.9%의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제8회 지방선거에서는 국민의힘 12곳, 민주당 5곳의 광역단체장에서 승리했다.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진영이, 높으면 진보진영이 승리한 공식이 지방선거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 산업화세대 자연감소·진보적 86세대 고령화…고령층 진보화
향후 산업화 세대의 영향력은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고령화로 인해 이들의 숫자는 자연적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과 함께 보수지지자로 분류되는 고령층의 인구변화는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통상 산업화세대를 포함한 고령층은 보수세가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고령세대 진입을 앞둔 40~50대에서 진보진영의 지지세가 강하다. 이들이 60대 이상 고령세대에 진입할 경우 고령화세대의 보수세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청년층의 높아지는 투표율에 4050세대의 고령화 진입, 여기에 고령화 세대의 막내 격으로 불리는 산업화세대의 자연적 감소란 인구분포 변화는 보수정치권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산업화 세대는 점점 저무는 세대다. 초고령화 시대가 온다고 하더라도 자연적인 인구감소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반면, 진보세가 강한 86세대가 올라온다. 60세 이상 숫자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민주화세대가 늘어나기 때문에 산업화세대 영향력은 전반적으로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인구변화에 따른 유불리를 쉽게 분석하기 어렵다는 관측도 있다. 77.1%의 투표율을 기록한 지난 대선에서 보수정당인 국민의힘 소속인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기 때문이다. 투표율 상승을 이끌며 '스윙보터'로 떠오른 청년세대의 표심이 특정 진영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번 총선에서 진보진영의 승리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 심판여론이 있어 특정 세대의 영향력 증감으로 분석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2022년 대선 때 윤 대통령을 찍은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다. 산업화세대만 철회한 것은 아니다"며 "산업화세대에 국한해 표심을 분석한다면 연령대별 변심, 지지 변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고 말했다.
pkb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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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났다. 192 대 108이라는 숫자는 이 구도로 4년간 국민 뜻을 받들라는 명령이다. 선거 결과는 윤석열 정부 심판이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의미보다 더 중요한 변화가 있다. 이번 총선은 전통적 선거 공식이 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지형의 근본틀이 바뀌고 있다. 선거를 결정짓는 기본 토대는 이념, 세대, 지역이다. 더이상 20대를 진보로 단정할 수 없고 60대를 보수로 규정할 수 없다. 서울을 진보 우세로, 부산을 정통보수로 여기는 분석틀도 깨졌다. 온라인 시대가 30년이 지났고 유튜브가 대세가 된 22대 총선. 이전과 전혀 다른 그 변화의 지점들을 차례로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