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반칙하면 나도 반칙하겠다는 국회 [기자의눈]

여야, 위성정당 비판하면서 올해도 창당 나서
"정개특위 공론조사·전원위 왜했나" 지적 나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공동취재) 2023.12.29/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서울=뉴스1) 이밝음 기자 = "한국 소수정당들의 죽음을 보는 것 같습니다."

국회 선거제 논의를 지켜본 한 정치학자의 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고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면서 이번 총선에서도 4년 전 꼼수가 재연될 전망이다.

서로를 비판하던 여야는 대놓고 위성정당 창당에 나섰다. 여야의 지적대로 위성정당이 그토록 문제라면 안 하는 것이 맞을 텐데, '상대가 먼저 반칙했으니 나도 반칙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은 위성정당 금지 입법에 노력했지만 여당 반대로 실패했다"는 이유를 들며 위성정당 창당을 공식화했다. 위성정당 방지라는 대선 공약을 스스로 철회한 셈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 대표를 향해 "의석수 나눠 먹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비판했지만, 국민의힘 역시 '국민의미래'라는 이름으로 위성정당 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본래 취지는 소수정당의 원내 진입을 돕는 것이다. 여야는 지난 총선에서 위성정당을 창당해 의석을 가져가면서 양당제를 더 공고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21대 국회에서 여야는 위성정당을 방지하겠다며 선거제 개편 논의에 나섰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공론조사를 진행하는 등 활동기한을 두차례 연장해 가며 논의를 이어갔다. 20년 만에 의원 전원이 참여하는 국회 전원위원회가 열려 의원 100명이 선거제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21대 총선과 같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와 위성정당 창당의 반복이다. 여야 모두 위성정당을 막을 고민보다 의석수 손익 계산에만 골몰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이번 총선에도 50cm 길이의 투표용지와 의원 꿔주기, 옷 뒤집어 입기, 쌍둥이 버스 같은 구태를 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준연동제가 기존의 병립형보다 더 나쁜 제도가 돼버렸다고 비판한다. 여야가 준연동제의 약점을 의도적으로 악용하면서 지난 총선보다도 더 연동제의 정신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국회의 의석 배분에 있어 국민의 의사의 왜곡을 최소화함과 동시에 지역주의를 개선하며 다양한 정책과 이념에 기반한 정당의 의회 진출을 촉진하려는 것'.

지난 총선을 앞두고 국회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개정안 원문에 담긴 제안 이유다. 준연동제를 도입한 뒤 국민의 의사 왜곡이나 지역주의,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 어느 것 하나 나아진 것이 없다.

선거 제도는 정당이 의석수를 더 얻기 위한 방향이 아니라 국민 의사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하는데, 선수가 룰을 정하다 보니 서로의 득실 계산에만 분주했던 것이다.

'이럴 거면 정개특위 공론조사는 왜 했나'. 정개특위 공론조사에 참여했던 한 전문가의 질문에 여야가 남 탓 대신 대답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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