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겪고도 여야가 싸우는 나라…"피습의 정치화 멈춰야"
말로는 혐오정치 끝내자면서…정쟁에 피습 활용
"피습 정치가 혐오 정치·정치테러 악순환 불러"
- 이밝음 기자
(서울=뉴스1) 이밝음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어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15세 중학생에게 습격당하면서 정치인 테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선 '정치 혐오'를 키운 정치권이 자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6일 배 의원실과 경찰 등에 따르면 배 의원은 전날 오후 5시18분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건물 안에서 중학생 A군(15)에게 둔기로 머리를 수십 차례 가격당했다. 피의자는 현행범으로 경찰에 체포됐고, 배 의원은 피습 직후 머리에 출혈이 있는 상태에서 순천향대서울병원으로 이송돼 수술받았다.
앞서 지난 2일에는 이 대표가 부산 강서구 가덕도 신공항 부지 현장을 방문해 지지자들과 만나던 중 '내가 이재명' 왕관을 쓴 김모씨(67)에게 흉기로 습격당했다. 이 대표 피습 24일 만에 정치인을 향한 공격이 또 발생한 것이다.
여야는 총선을 70여일 앞두고 발생한 이번 피습 사건을 '정치 테러'로 규정하고 혐오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 정치가 상대를 증오하고 잘못된 언어로 국민에게 그 증오를 전파하는 일을 끝내지 않는 한 이런 불행한 사건은 계속해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모든 형태의 폭력과 테러에 반대한다, 혐오를 반대하는 국민과의 연대를 더 넓히겠다"고 했다.
하지만 여야가 말로는 혐오 정치를 규탄하면서 정작 피습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3주 전 발생한 이 대표 피습 사건도 발생 직후 정치권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현재는 정쟁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당무에 복귀한 이 대표는 "법으로도, 펜으로도 안 되니 칼로 죽이려 한다"고 했고, 민주당은 '당 대표 정치테러 대책위원회'를 출범시키고 피습 사건의 축소·왜곡·은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그 정도면 망상"이라고 받아쳤다.
이 대표 피습 사건이 배 의원 피습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대표 피습과 이후 여야 공방이 언론을 통해 계속 보도되면서 모방범죄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전반적으로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치 혐오가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10대들이 제대로 된 정치 교육을 받기 전에 정치 혐오부터 배우는 것"이라며 "지난번 이 대표 피습 사건에서 어른들이 편을 갈라 싸우는 걸 보면서 모방심리, 호기심 욕구가 생겼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이 대표 사건에서 모방 심리가 작동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현역 국회의원인지 확인하고 가격한 뒤 도망을 가지 않았다는 점을 볼 때 다른 또래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우월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여야가 피습 사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보다 건설적으로 치유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피습 사건이 벌어지면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저마다 메시지를 내면서 정치권이 과잉 대응하는 경향이 있는데,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엄 소장은 "이런 일이 벌어지면 '피습의 정치'를 극대화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또 다른 혐오 정치와 정치 테러를 부르는 악순환의 고리가 된다"며 "냉정을 되찾고 차분하게 대응하면서 혐오 정치·피습 정치로 과잉 해석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여당 중진 의원도 "우리 정치가 너무 극단적으로 대립하다 보니 사회 전체가 극단적인 경향으로 물들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정치권도 상대를 쓰러뜨려야 내가 이긴다는 시각보다는 국민 마음을 얻는 경쟁을 하는 정치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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