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 선관위 사무총장·차장 동반 사퇴…독립성 뒤에 숨은 비리

채용비리 6건…4건은 4촌 이내 친족 채용 보고 규정도 안지켜
외부 감시 움직임에 '독립성' 내세워…"내부부터 썩은 집단" 비판

자녀 채용 특혜 의혹을 받고 있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다. 사진은 지난 23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항의 방문했을 당시 박 사무총장(오른쪽)과 송 사무차장의 모습. 2023.5.25/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자녀 채용 특혜 의혹을 받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박찬진 사무총장과 송봉섭 사무차장이 25일 도의적 책임을 지고 동반 자진사퇴 한다. 특혜 의혹이 확산하는 중에도 "문제없다"던 선관위는 '현대판 음서제' '아빠찬스위원회'란 조롱을 받은 끝에 두 사람의 사퇴와 함께 진상 규명과 재발방지를 약속하며 수습에 나선 모습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선관위가 그동안 '헌법상 독립'이란 이름 아래 자정기능을 상실한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외부의 감시를 거부하면서 내부 비리를 키워 지금의 사태에 직면했다는 지적이다.

선관위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박 사무총장과 송 사무차장이 채용 특혜 의혹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 한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두 사람의 사퇴와 상관없이 현재 진행 중인 특별감사 및 자체 전수조사를 통해 전·현직 공무원의 자녀 채용 관련 진상을 규명하고, 그 결과에 따라 징계 또는 수사 요청 등 모든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 선관위는 6건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을 휩싸인 상태다. 박 총장의 자녀는 광주 남구청에서 9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지난해 1월 경력직 직원으로 선관위에 채용됐는데 당시 최종 결재자는 아버지인 박 사무총장이었다. 송 차장 자녀는 충남 보령시에서 8급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2018년 선관위 8급 이하 경력직 공모에 지원해 8급으로 채용됐다.

김세환 전 사무총장의 경우 자녀가 강화군청에서 일하다 2020년 인천 선과위로 이직한 뒤 반년 만에 7급으로 승진하고 미국 출장 기회 등 특혜를 받았다는 논란이 일었는데, 당시 이직 과정에서 아버지인 김 전 사무총장이 최종 결재자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용 제주도선관위 상임위원 자녀도 아버지가 일하는 선관위에 경력직으로 합격한 것으로 알라졌다. 이들 4건의 경우 선관위 공무원은 4촌 이내 친족 채용 시 보고하게 돼 있는 규정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은 의혹이 전해지자 선관위를 두고 '현대판 음서제' '아빠찬스위원회' 등 조롱 섞인 비판과 함께 진상 규명 및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선관위는 이같은 요구에 기관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내세우며 거부감을 보였다. 여권을 중심으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 등의 요구가 이어졌지만, 선관위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이번 논란 초기 박 총장과 송 차장 자녀 채용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하게 진행됐으며 특혜는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여론을 악화시키기도 했다.

이 때문에 선관위가 그동안 견제, 감시를 피하는 이유로 꺼내 든 '독립성'이 결국 내부를 곪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부의 견제와 감시가 사라지면서 내부 비리가 자랄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는 지적이다.

실제 선관위는 북한해킹 논란이 발생했을 때도 국정원의 보안점검 요청을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거부했다. 김민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앞서 "선관위는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헌법상 독립'을 운운하며 외부 개입을 차단했고 그 결과 선관위는 내부부터 썩어 들어 공정성과 투명성을 모두 잃은 문제 집단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무처 직원들이 행정을 독점하는 구조적 문제도 지적된다. 선관위의 수장은 중앙선관위원장이다. 선관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3명과 국회에서 선출하는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명 등 9명의 중앙선관위원 중 관례상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선관위원이 맡는다.

하지만 선관위원장은 법적으로 비상임으로, 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겸해왔다. 이로 인해 사실상 선관위 내부 일을 속속들이 알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선관위원장이 사무처 내부 비리를 알기는 쉽지 않은 구조"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사태를 두고 노태악 선관위원장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졌다. 미온적 태도로 사태 수습을 사실상 방기했다는 지적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선관위가 기둥부터 썩어있었던 게 드러남에도 책임져야 할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뻔뻔하게 자리를 버티고 있다"며 노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pkb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