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속풀이] 국회의원 수 늘리면 세금 낭비일까?
의원 수 50명 VS 500명 누가 권한 클까…"많을수록 분산돼"
박원호 교수 "설득할 용기도, 기득권 포기할 용기도 없는 것"
- 이밝음 기자
(서울=뉴스1) 이밝음 기자 = 국회가 의석수를 300석으로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기로 했다. 국회의원을 300명에서 350명으로 늘리는 방안도 함께 논의할 예정이었지만 여야가 모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논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정말 국회의원 증원은 '안건으로 상정할 가치조차 없는' 내용일까.
◇싸늘한 여론 의식…사흘 만에 뒤집힌 의원정수 확대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애초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 정치관계법개선소위가 합의한 결의안 1안과 2안에는 비례대표를 현재 47명에서 97명으로 늘려 전체 의원 정수를 300명에서 350명으로 증원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소위가 결의안을 내놓은 지 사흘 만인 지난 20일 "국회의원 정수는 절대 증원하지 않겠다"고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도 국민의힘 입장 변화를 비판하면서도 "국민 동의 없이는 국회의원 정수 확대를 추진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저희 당에도 반대 의견이 다수"라며 한발 물러섰다.
여야는 의원 정수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로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들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21~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회의원 정수를 늘려도 된다'는 응답은 9%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줄여야 한다'는 57%, '현재가 적당하다'는 30%였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전체 응답률 8.4%,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의원 수 50명 VS 500명…누가 더 권한 클까
이와 달리 그동안 학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의원 정수를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의원 수가 늘어날수록 특권층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권한이 분산되기 때문에 의석수를 늘려 더 다양한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장 산하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에 참여했던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회의원을 500명을 뽑는 것보다 반대로 국회의원 수를 줄여 50명만 뽑는다고 생각해보라"며 "예를 들어 국회의원이 길 가다 발에 치일 정도로 흔해지면 그게 이들의 특권을 줄이는 것이지 이들을 적게 뽑는다고 해서 권한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정개특위 소위원장을 맡은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도 "오히려 의원 숫자를 줄이면 권한이 집중돼서 의원이 제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의원 정수를 늘리지 않고 정치개혁을 할 방법이 있다면 그렇게 하면 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봐야 한다"며 "정치개혁을 위해 의원 정수를 늘리는 걸 국민이 양해해주거나 정치개혁을 안 해도 되니 의원 수는 절대 늘리지 말라고 하거나 국민들께서 선택을 해줘야 하는 문제 같다"고 말했다.
의원정수 확대를 논의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의원 1인당 인구수다. OECD 평균 의원 1인당 인구수는 평균 8만명으로, 17만명인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보다 의원 1인당 인구수가 많은 국가는 미국 63만명, 멕시코 21만명, 일본 18만명 등 3곳뿐이다.
◇의원들도 의석 수 확대 원하지 않는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의석수 확대 없이는 유명무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 대표성을 살리기 위해 권역을 나눠서 비례대표를 선발하자는 취지인데, 현행 비례대표 47석을 6개 권역으로 나누면 권역당 의석수가 너무 적어 대표성을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지금 선거제도에 담아야 하는 내용은 양극화된 정치를 극복하는 것과 지방의 대표성을 살리는 것"이라며 "지방의 발언권을 더 주기 위해서는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답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치 불신으로 의원 수 확대에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질수록 기성 정치인의 기득권만 유지된다는 우려도 있다.
일각에서는 의원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 의석수 확대를 원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적극적으로 선거 개혁 필요성을 알리며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선거제도 개혁을)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봤으면 한다"며 "인기 없는 정책이 반드시 나쁜 정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설득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하는데, 설득할 용기도 없고 기득권을 포기할 용기도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지난 22일 국회의원 정수는 300명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와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와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담긴 결의안을 의결했다.
여야는 오는 30일 본회의에서 선거제 개편과 관련한 국회 전원위원회를 구성하고 선거법 개정 토론에 나설 예정이다. 국회의원 299명이 2주 동안 토론을 진행한 뒤 4월 중 여야 합의로 단일한 수정안을 처리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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