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사과법, 효과 있을까
(서울=뉴스1)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도로에서 접촉사고가 났는데 분명히 잘못한 상대방 운전자가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얼굴 표정은 분명히 겸연쩍은데 말을 하지않는 이유는 말을 하면 자신이 전적으로 법률상 과실이 있다는 인정이 되니 하지 말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모양이다. 그런데 분명히 잘못해 놓고도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없던 화도 나서 별일 아니니 그냥 가시라고 하기도 싫어진다. 사람 심리다. 간단한 교통사고가 아닌 심각한 의료사고라면 어떨까.
미국의 40개 주가 1999년부터 이른바 사과법(apology law)을 제정해 시행한다. 의료진의 환자에 대한 사과가 의료소송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의료기관측의 사과를 장려하기 위해 제정된 사과법은 병원측의 환자에 대한 사과를 쉽게 하고 그 결과로 의료소송을 줄여 화해로 이끄려는 목적이다. 사과나 그에 준하는 여러 표현이 소송이 발생하는 경우 증거로 활용될 수 없다는 규칙을 증거법에 포함시켜 그를 지원한다.
그런데 병원측이 사과를 했다는 사실이 병원측의 과실을 추정케 하는 모순이 있다. 사과가 소송에서 직접 증거로 사용될 수는 없다고 해도 환자측이 승소 가능성을 높게 예측하도록 해 오히려 소송을 유발할 것이다. 사과법은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고있을까. 스탠퍼드 로 레뷰에 발표된 앨라바마대 벤자민 맥마이클 교수팀의 연구 결과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준다.
연구팀은 보험회사 자료를 기초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전문의 90%를 대상으로 8년간의 의료소송 기록을 분석했다. 의사 1인을 기준으로 합산하면 총 7만5천 년 동안의 의료기록에 해당하고 대상의 75%가 외과의사들이다. 외과의사들이 주로 소송을 당하는 이유는 원고측이 사고 발생과 의사측 과실을 입증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해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사과법 자체는 소송을 줄이고 화해를 촉진하는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병원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시행하는 사과프로그램은 효과가 다르다고 한다. 예컨대 미시간대병원의 경우(미시간주도 사과법을 시행한다) 의료사고에 대한 사과프로그램을 시행한 후 환자측의 보상청구가 1/3 감소했고 소송은 2/3 감소했다. 병원이 보상을 한 사례에서는 보상금액이 60% 감소했고 소송으로 이어진 경우 배상금액이 45% 감소했다. 법적 다툼의 기간도 평균 20개월에서 8개월로 줄어들었다.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가해자의 사과는 즉시 피해자의 심적 고통을 줄이고 화를 가라앉힌다. 피해자의 분노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낮아지고 슬픔과 상실감을 통제하는 과정을 거쳐 가해자의 행동이 발생하기 전의 심적 상태로 복귀하는 것을 돕는다. 사과를 통해 피해자는 가해자의 행동뿐 아니라 가해자가 통제할 수 없었던 주변 요인으로까지 귀책을 확장시킨다.
여러 실증연구는 의료사고의 경우 병원측의 사과는 환자에게 치유효과를 발생시키고 자존감도 회복시킨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사과는 모종의 사회적 규칙이 위반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피해자가 소속되어 있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망 내 피해자의 지위를 복원시키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사과는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기제다.
그러나 경제적인 손실이 발생한 경우 사과는 충분한 역할을 하지 못함을 위 연구가 알려준다.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닌 셈이다. 국내에서도 사과법의 제정이 잠깐 논의된 적이 있는데 중단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력의 낭비를 막은 셈이다. 그렇긴 해도 병원 차원의 사과프로그램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법적 유불리를 떠나서 잘못한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하는 사과하는 것이 더 효력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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