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vs 安 "대기업 손본다" 한목소리… 경제계 '당혹'넘어 '허탈'

상법 개정안 내용 대부분 반영… '대기업=공정사회 적' 인식 '우려'

ⓒ News1 최진모 디자이너

(서울=뉴스1) 서명훈 기자 = 유력한 대권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경제공약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붙여진 이름은 다르지만 경제공약의 핵심은 ‘공정’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특히 공정함을 해치는 주범으로 대기업을 지목하며 대대적인 개혁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당혹감을 넘어 허탈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법인세율 인상과 징벌적 손해배상,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그동안 여러 차례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이 경제공약에 그대로 담겨서다.

◇ 무산된 상법 개정안 내용 대부분 반영, ‘한숨’ 늘어가는 경제계

문재인 대선 후보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문재인의 경제비전'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경제의 중심을 기업에서 사람으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경제정책 'J노믹스'를 발표했다. 앞서 안철수 대선 후보도 지난 3월 경제개혁 4대 과제를 내놨다.

두 후보의 경제공약에는 지난 3월 국회 처리가 무산된 상법 개정안 내용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공통적으로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다중대표 소송제가 담겼다.

집중투표제는 이사 선출시 1주 1표가 아니라 선출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3명의 임원을 뽑는 주주총회에서 10주를 가진 주주는 지금까지 각 3명에 대해 10표의 찬반권을 가졌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1번 후보에 30표를 몰아주고 나머지 2·3번 임원 선임에 대해서는 의결권을 포기할 수 있다.

경제계는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될 경우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헤지펀드들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다고 지적한다. 국내 매출액 상위 10대 기업 가운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현대모비스 등 4곳은 헤지펀드가 추천한 이사가 선임될 것으로 예상된다.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무방비로 노출돼 제2의 KT&G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감사위원 선임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총수와 친분이 있는 인사가 이사회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소액주주 권리강화 대신 외국계 투기자본 영향력만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의 지분 1% 이상을 가진 주주가 자회사 부실경영에 대해 자회사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이와 관련 송종준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전 기업법학회 회장) 교수는 “미국의 경우 법원이 자회사의 이사에게 경영판단원칙을 적극 인용하고 있어 진취적인 경영판단에 큰 방해가 되지 않는다”며 “반면 우리나라에서 다중대표소송제가 도입되면 면책이 용이하지 않기 때문에 이사의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경영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기업가 정신이 더 설 자리를 잃게 되는 셈이다.

◇ 법인세 인상·지주회사 요건 강화… 부작용 우려

대기업 개혁 정책은 두 후보간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경제 분야 공약에서는 다소 차이를 보였다.

먼저 문 후보는 일자리 창출과 경기 회복을 위해 재정지출을 과감히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위해 법인세 실효세율을 조정하고 중복 비효율 사업을 조정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이에 대해 경제계는 “대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해외에 비해 낮은 수준이 아니다”며 “이미 연구개발(R&)과 투자 외에는 비과세 감면이 대부분 정리가 돼 있다”고 지적한다. 법인세 세율을 높이기 이전에 실효세율을 높이려면 비과세 감면을 없앨 수밖에 없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비과세 감면을 축소하면 세수는 늘어나겠지만 투자와 R&D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이에 따른 민간의 투자를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 후보는 ‘지주회사의 지분 요건 강화’를 들고 나왔다. 지배권 강화만을 목적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현재 지주회사는 자회사 및 손자회사의 지분을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이상 보유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 비율을 상향 조정하겠다는 의미다.

송 부원장은 "지분 보유 비율을 높이면 기업들이 투자와 R&D에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지주회사를 전환할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려는 정책과 배치된다"고 설명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발간한 ‘19대 대선후보께 드리는 경제계 제언’을 통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으로 더 중요한 원칙과 가치를 희생하는 것은 아닌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현행 기업지배구조 관련제도는 이미 선진국 수준이거나 그 이상이다. ‘제도’ 부분에서는 더 나은 해법을 찾기 힘들며, 이제는 공정하고 일관된 집행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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