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기 사건' 나흘 만에 등판한 김정은…'전략적 모호성' 베꼈다
최고지도자의 의중 숨기기…2020년 연락사무소 폭파 때와 비슷
김여정, '두 줄 담화'로 돌연 美 책임론도
- 최소망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북한이 '한국의 무인기 평양 침투' 주장을 펼치며 남북 간 긴장을 고조시킨 지 나흘 만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직접 '등판'했다.
김 총비서는 군 고위간부들을 모은 협의회를 개최하고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표명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사건 초기 보였던 '전략적 모호성'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한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5일 "김 총비서가 지난 14일 국방 및 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를 소집했다"라고 보도했다. 국방상·군수 담당 당 비서·총참모장·정찰총국장·국가보위상 등 주요 군 고위 간부들이 참석했다.
김 총비서는 리창호 정찰총국장으로부터 '공화국 주권 침범 도발 사건'에 대한 보고를 듣고, 리영길 총참모장에게 대응 군사 행동계획도 청취했다. 신문은 김 총비서가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향후 대응 방안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는 지난 11일 외무성 '중대 성명'으로 북한이 무인기 침투 사건을 처음 발표한 이후 이날까지 나흘간 쏟아냈던 비난과 군사 행동 예고와는 결이 다소 다른 모습이다. 그간 간부들과 국가 기구가 나서 대남 총공세를 펼쳤다면, 최고지도자가 사안의 전면에 나서면서 마치 상황을 관리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김여정 당 부부장은 무인기 사건을 계기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를 것", "무엄하고도 자멸적인 선택", "끔찍한 참변","처참한 괴멸" 등 노골적이며 위협적인 언사를 가했으며 국방성은 총참모부가 국경선 일대에 '완전사격 준비태세'를 갖추라는 '대남 직접 타격' 작전 예비지시를 내렸다고도 밝힌 바 있다.
김 총비서가 전날 주재한 협의회 관련 보도는 이런 김 부부장, 국방성의 격앙된 모습보다 차분하게 보이는데, 이는 지난 2020년 북한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의 패턴과 비슷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때도 김여정 부부장(당시 제1부부장)이 먼저 대북전단(삐라)을 빌미로 전면에 나서 대남 군사행동을 주도했다. 북한은 김 부부장의 몇차례 위협 후 6월 16일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실제로 폭파했다.
북한은 연락사무소의 폭파 이후에도 '1호 전투근무태세'를 선언하는 등 우리에 대한 추가적인 군사조치를 공언했지만 김 총비서는 6월 23일 중앙군사위원회 예비 회의를 열고 대남 군사행동 계획을 '보류'하도록 결정했고 이후 남북의 긴장은 완화됐다.
이러한 전례 때문에 북한이 이번 협의회의 구체적 결정 사항을 공개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일종의 '출구전략' 찾기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전략적 모호성'으로 우리 측에서 자신들의 의도를 명확하게 해석하기 어렵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대남 맹비난, 위협을 쏟아내던 김여정 부부장이 전날 밤의 담화에서 돌연 '미국 책임론'을 들고 나온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김 부부장은 전날 이례적인 두 줄의 담화를 통해 "평양 무인기 사건의 주범이 대한민국 군부 쓰레기들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다"라면서도 "핵보유국의 주권이 미국 놈들이 길들인 잡종개들에 의해 침해당했다면 똥개들을 길러낸 주인이 책임져야 할 일"이라면서 난데없이 무인기 사건을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는 논리를 댔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북한이 미국을 끌어들여 궁극적으로는 남북 간 우발적 무력 충돌을 방지하려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을 제기하고 있다.
somangchoi@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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