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러와 조약에서 처음으로 '남북관계' 뺐다…'南 무시·적대' 지속

2000년에 언급됐던 '한반도 분단 종식'·'평화통일' 모두 빠져
남측에 대한 북한의 적대적 인식 반영…러시아도 北 인식 용인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오른쪽)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 2024.06.20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북한과 러시아가 두 국가 간 관계를 규정하는 새 조약을 체결하면서 '한반도'와 '통일'에 대한 언급을 완전히 삭제했다. 남한에 대한 북한의 적대적 인식이 고스란히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북러 정상회담 종료 하루 뒤인 20일 김정은 총비서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평양에서 서명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전문을 공개했다. 조약은 총 23조로 구성됐다.

눈에 띄는 부분은 두 국가 중 어느 한 국가가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상대방은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두고 남북 간 충돌이 발생하거나 한반도 유사시 자칫 러시아가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여기에 기존 조약들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포함됐던 '한반도 통일' 및 남북관계 관련 내용이 처음으로 빠졌다.

2000년 2월 체결된 '조러 친선·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에는 "쌍방은 지속적인 국제 긴장 요인이 되고 있는 한반도 분단 상황의 조속한 종식, 그리고 독자성, 평화통일, 민족 결속 원칙에 따른 한반도의 통일이 전체 한반도 국민들의 국민적 이해관계에 완전히 부합하는 것은 물론 아시아 및 전 세계 평화와 안정에도 기여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4조에 포함시켰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서명한 2000년 7월 '조로 공동선언'(평양 선언)에도 남북관계 및 통일 관련 내용이 담겼다. 심지어 여기에는 공동선언 발표 한 달여 전에 개최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나온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존중한다는 언급까지 있었다.

평양선언에는 북러는 "북남(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조선의 통일 문제를 조선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을 환영하면서 이 과정에 대한 외부의 간섭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 대해 견해의 일치를 보았으며 모든 유관국이 이를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간주한다"라면서 "러시아는 이와 관련한 북남 조선 사람들 사이의 합의에 대해 지지를 확인했다"라고 명기돼 있다.

그러나 이번 새 조약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전부 빠졌다. 이는 북한이 올해부터 새 기조로 정한, 남한을 더 이상 같은 민족으로 보는 게 아닌 '적대적 두 국가' 또는 '교전국'으로 보겠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김 총비서는 지난해 말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대한민국과의 통일은 성사될 수 없다고 밝혔다. 올해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 국가'로 간주하고 '민족, 화해, 평화통일' 정책을 폐기하며 적대적인 대남전략을 펼칠 것을 지시했다.

북러의 모든 조약에 유지됐던 내용이 이번에 빠진 것은, 러시아 역시 북한의 이러한 대남 인식 및 정책 변화를 수용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한국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한 러시아가 이제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을 '적대적'으로 대할 여지가 커진 것이다.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하듯 조약의 다른 조항에도 '적대적 국가'로서 남한을 견제하기 위한 내용이 담겼다.

새 조약 5조에는 북러 각자가 상대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하는 협정을 제3국과 체결하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들에 참여하지 않을 의무를 지닌다", "쌍방은 제3국이 상대방의 자주권과 안전, 영토의 불가침을 침해할 목적으로 자기 영토를 이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향후 러시아와 북한이 한국과 새로운 협상을 전개하더라도 그 결과물에 대해 상호 간 '검증'을 받아야만 결과물 도출이 가능한 구조가 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이 조항 역시 북러가 한국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로 해석되기도 한다.

somangcho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