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무더기 담화로 러 편들고 한미 비난…노골적 '신냉전' 구도 조성

김여정·임천일 등 외교 사안 담화 3건 동시 신문에 공개
중동 정세·반미 연대에 자신감…美와 반대 세력 대립 부각

(평양 노동신문=뉴스1) =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부부장[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북한이 24일에만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과 임천일 외무상 부상 등의 명의로 담화를 3건이나 쏟아냈다. 북한은 한미 연합연습을 비난하고 러시아를 두둔했는데, 최근 불안한 중동 정세를 보면서 '신냉전' 구도 부각에 적극 나선 모습이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 부부장과 외무성 보도국 대외보도실장 명의 담화를 나란히 싣고 "적반하장의 억지는 통하지 않는다"라고 한미의 연합연습을 비난했다.

김 부부장은 "올해에 들어와 지금까지 미국이 하수인들과 함께 벌인 군사연습은 80여 차례, 한국 괴뢰들이 단독으로 감행한 훈련이 60여 차례나 된다"라며 "이 사실을 놓고도 지역 정세 악화의 주범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똑똑히 알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그런데도 미국이 "언제나와 같이 어김없이 우리의 자위권에 해당한 활동을 두고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 '지역과 국제평화와 안보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억지주장을 펴며 적반하장격으로 놀고 있다"라고 비난했다.

최근 진행한 핵반격가상종합전술훈련 등 자신들의 군사 행동을 '자위권에 해당한 활동'이라는 기존 주장을 펴면서 이를 비난한 미국에 대한 불만과 비난을 쏟아낸 것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이 대미 담화를 낸 것은 지난해 12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8형' 발사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논의를 규탄한 이후 4개월여 만이다.

익명의 외무성 대외보도실장 역시 같은 맥락의 주장을 하며 "공화국은 정당한 방위력 강화가 불법으로 매도되는 비정상적인 행태가 관습화되는 데 대해 절대로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강력하고 분명한 행동으로 주권적 권리와 합법적 이익을 철저히 수호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임천일 외무성 러시아담당 부상 명의의 담화까지 나왔다. 임 부상은 미국 하원에서 최근 우크라이나에 대한 600억 달러 규모의 추가군사지원을 제공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을 언급하며 "한순간 환각제에 불과하다"라고 비난했다.

임 부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두고 "(러시아가) 국가의 주권적 권리와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성전"이라며 "영웅적인 러시아군대와 인민의 전진을 절대로 멈춰 세울 수 없다"라고 러시아 편을 들기도 했다.

이같은 담화들은 내용상 이전에도 했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이를 담화 형식으로 일제히 쏟아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는 외교적 고립 상황에 있던 북한이 최근 국제 정세에서 자신감을 얻은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장기간 전쟁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충돌, 여기에 이란과 이스라엘의 정면충돌까지 발생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반대 세력의 대립도 더욱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한반도에서 미국과 대립해 온 북한은 지난해부터 미국 등 서방과 그 반대 세력 간의 신냉전 구도를 강화하려는 외교 전략을 펼쳐온 것으로 분석되는데 이같은 중동 정세는 이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라고 판단했을 수 있어 보인다.

북한이 최근 이란과 벨라루스 등 대표적인 친러 국가들과의 만남을 이어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이날 보란 듯이 이란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했다고 밝혔다. 대외경제상을 단장으로 하는 경제 대표단이지만, 북한이 이란에 5년여 만에 고위급을 파견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교류와 협력이 강화될 수 있다. 특히 북한과 이란과 러시아에 무기를 판매, 지원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어 군사 협력 가능성도 있다.

또 최근엔 러시아 동맹국인 벨라루스의 외무 차관이 북한을 방문해 앞으로 양국 간 고위급 왕래와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이는 반미 연대 강화에서 나름의 외교적 성과를 낸 것으로 자체 판단한 근거일 수 있다.

이번 담화는 또 북한이 조만간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내부 일정을 고려한 행보일 수도 있어 보인다. 북한은 올해 군사정찰위성 3기를 더 쏘겠다고 공언했고 최근 이를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정찰위성은 대북제재 위반 사안으로, 발사한다면 지난해 11월 '만리경 1호' 때처럼 유엔 안보리에서 대응 논의를 할 가능성이 높다. 김 부부장이 이날 자신들의 군사 행보가 대북 제재 위반이라는 데 반발하며 한미를 정세 악화 주범으로 비난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두고 제재 무력화를 주장하기 위한 포석일 수 있어 보인다.

yeh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