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北 만경대, '태양의 성지'에서 '애국의 성지'로…김일성 신격화 해제
김일성 3·1운동 거론하며 "만경대, 애국 싹튼 애국의 성지"
추상적 '태양' 대신 실용적 '애국' 내세워…'현실적 선동' 변화
- 양은하 기자
(서울=뉴스1) 양은하 기자 = 최근 김일성 주석 생일의 명칭을 '태양절'에서 '4·15'로 변경한 것으로 파악되는 북한이 김 주석의 생가가 있는 만경대도 '태양의 성지'가 아닌 '애국의 성지'로 개념을 변경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김 주석 생일 하루 전날인 14일 만경대를 다룬 '인민의 마음속에 영원한 유서 깊은 혁명의 성지' 제목의 기사에서 "만경대는 이 나라, 이 조선을 세기의 단상에 높이 떠올린 애국의 성지, 혁명의 성지"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언젠가 만경대를 찾은 김정은 총비서가 "우리 만경대 일가는 그처럼 간고한 혁명의 길에 남 먼저 뛰어들어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했고 난국을 앞장에서 헤쳐왔으며 자신들의 모든 것을 서슴없이 바쳤다"라며 항일무장투쟁으로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김 주석의 '희생'에 가슴 아파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신문은 김 주석이 만경대에서 보낸 유년 시절에 대해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는 애국의 첫걸음을 떼고 혁명적 세계관을 간직한 귀중한 나날이었다"라며 김 주석이 어린 나이에 어른들과 함께 3·1인민봉기(3·1운동) 시위대열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며 보통문 앞까지 행진한 것을 거론했다.
그러면서 "만경대야말로 위대한 수령님의 마음속에 애국, 애족, 애민의 숭고한 뜻을 심어준 애국의 성지"라며 "애국의 성지에서 수령님께서 한생토록 간직한 이민위천의 뜻이 싹텄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지난해만 해도 북한은 만경대를 '태양의 성지, 혁명의 성지'로 표현했다. 작년 태양절 기사를 보면 "만경대, 이곳은 우리 겨레가 그처럼 목마르게 기다려온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 솟아올랐기에 온 나라, 온 세계가 다 아는 태양의 성지로 빛을 뿌리게 됐다"라고 했다.
기존에는 '태양'과도 같은 김 주석이 태어난 곳이라는 점을 강조해 '태양의 성지'라고 했다면, 이번에는 만경대가 김 주석에게 애국심이 생겨난 곳이라는 점을 부각해 '애국의 성지'로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이 추상적 개념인 '태양'이 아닌, 보다 현실적 개념인 '애국'을 앞세우는 식으로, 선대의 위대성을 선전하는 방식을 바꾼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김 주석은 신 같은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애국을 위해 희생한 존경받을 만한 위인이라는 것이다.
이는 김 총비서가 '김일성 신비화 자제'로 스스로를 높여 '홀로서기'를 하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태양' 같은 신격화가 외부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진 주민들에게 더 이상 먹히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해 더욱 실용적인 접근을 하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어 보인다.
최근 북한 보도를 보면 '태양절'이라는 공식 명칭을 변경했을 뿐 아니라 김 주석을 우상화하는 '태양' 표현 자체를 그에 대해 사용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북한은 김 주석 사후 "수령님의 존함은 곧 태양"이라며 그의 생일을 '태양절'로 격상하고 그를 '주체의 태양'으로, 인민을 '태양민족'으로, 그가 태어난 만경대를 '태양의 성지'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태양의 역사', '태양의 미소' 등 '태양'이 들어간 표현은 올해 들어 급격히 감소했다.
북한은 그간 '태양절요리축전'으로 개최해 오던 행사의 이름도 올해는 '태양'을 빼고 '전국요리축전'으로 변경했다.
yeh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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