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위부가 내 아이 잡아가고 거짓말"…北 113명 강제실종 과정 추적

인권조사기록단체 보고서 발간…실종 지도, 흐름도 작성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31일 발간한 강제실종 보고서 '존재할 수 없는 존재'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아이들이라도 내놔달라고 보위부 갔는데, 시끄럽다고 가라고, 그런 일 없다고 했어요. 그 사람들은 '우리가 몰래 붙잡았는데 너네가 어떻게 아냐?'고 (잡아떼니까) 소문이 어떻게 퍼진단 말이야."

2011년 함경북도 경원군의 A 씨는 두 명의 손주를 데리고 탈북하려다 체포됐다. 체포됐다는 소문을 듣고 가족이 지역 보위부를 찾아가 확인하려 했지만 보위부에서는 '그런 일 없다'라고 부인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아이들이라도 찾고 싶었지만 보위부의 부인에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이 31일 소리 소문 없이 강제 실종된 북한 주민 113명의 연행·체포 과정을 추적해 강제실종 실태보고서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을 발간했다. 보고서에서는 강제실종범죄가 벌어지는 단계와 패턴, 실종된 위치와 지목된 관할 기관이 명시됐다.

TJWG이 조사한 사례들을 보면 북한 당국은 북한의 법에 규정된 체포, 구속 사유와 구금장소의 가족 통지 의무를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통보 부재는 가족들이 피해자의 생사 또는 행방을 알아보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보고서는 피구금자의 가족에게도 기본적인 상황조차 밝혀주지 않는 북한 당국의 행태는 강제실종자와 그 가족들로 하여금 합법적인 구제 조치를 시도할 수 없게 단념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 형사소송법 제179조는 체포, 구속 시 48시간 이내에 체포, 구속된 피심자의 가족에게 체포, 구속 사유와 구속 장소를 알려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법과 현실은 달랐다. 이번 조사에서 피심자의 체포나 구금이 가족에게 공식적으로 통지된 사례는 전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아울러 TJWG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 62명을 2021년 1월부터 3년 5개월간 심층면담해 66건의 강제실종 사건을 분석했는데, 이들이 실종 이르는 경로를 지도화한 것이 눈에 띈다. 중국의 북송 후 이감 경로, 종교활동 혐의에 따른 강제실종 과정, 탈북을 준비하던 주민들의 실종 과정 등을 흐름도로 제시하고, 일가가 실종된 사건의 경우에는 가계도로 작성했다.

실종자 일가 가계도

보고서는 체포·연행된 위치를 분석한 결과 113명 중 90명(79.6%)이 북한 내에서, 23명(20.4%)은 중국과 러시아 등 해외에서 체포되면서 실종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중국에서 체포됐던 19명 중 3명은 한국 입국에 성공한 것으로 파악됐으나 나머지 110명의 행방과 생사는 지금까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강정현 프로젝트 디렉터는 "기존까지 북한 정권의 강제실종 범죄는 한국인과 일본인 등 외국인 납치 사건 위주로 조명됐지만 북한이 자국민들에게 저질러온 강제실종 범죄는 덜 조명된 불균형이 있었기에 북한 내 강제실종 상황을 밝히는 데에 초점을 뒀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북한 내 강제실종 사건의 상당수에 중국과 러시아의 책임이 누적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라며 "각국 국가기관이 체포해 강제송환하거나 자국 영토에서 북한 기관원들이 벌이는 납치 활동을 묵인·방조한 데서 비롯되는 강제실종을 초국가적 범죄로 규정하고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강제실종자 113명 중 북한 내에서 체포된 인원은 90명, 해외에서 체포된 인원이 23명이었다. 지목된 담당 기관으로는 △국가보위성 62명(54.9%) △중국 공안부 17명(15%) △북한 국경경비대 9명(8%) △북한 조선인민군 보위국 5명(4.4%) △북한 사회안전성 4명(3.5%) △러시아 당국 2명(1.8%) 등 순이었다.

보고서는 한국어와 영어판을 우선 배포하고, 스페인어판을 내달 중 추가 발간할 계획이다.

체포 연행 기관 데이터 (TJWG 제공)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