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1 적대국' 규정한 北…'한민족의 땅' 독도도 포기하나

우표, 역사 교과서 등 일상과 맞닿아 있는 '민족'·'통일'
"주체사상 공고화 수단이기도 한 '독도'…北, 난해한 작업 맞이한 것"

상공에서 바라 본 독도의 전경. 2012.08.10 ⓒ 로이터=뉴스1 ⓒ News1 임여익 기자

"독도는 우리나라의 동쪽끝에 있는 섬이며,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이 물고기를 잡으면서 지켜온 우리나라의 신성한 령토이다."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북한 초급중학교 1학년 '조선지리'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독도 관련 내용이다. 북한 주민들도 어릴 때부터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것을 인지하며 커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북한은 최근 헌법 개정으로 사회 곳곳에 내재된 민족·통일 개념을 지우고 '남한'을 '한국'으로 대하는 '두 국가'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북한의 입장에선 독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북한은 지난 17일 관영매체를 통해 헌법에서 대한민국을 완벽한 타국이자 적국으로 규정한 사실을 밝혔다. 경의·동해선 남북 연결 철도와 도로를 폭파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이는 대한민국을 철저한 적대 국가로 규제한 공화국 헌법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독도도 '타국'이자 '적국'의 영토가 된다.

'한민족의 섬'에서 '유사시 점령해야 할 남의 땅?'

북한은 교과서에서 '국토의 범위'를 설명할 때도 독도를 언급했다. 고급중학교 3학년 '지리3' 교과서에 따르면 북한에서 인식하는 영토는 최북단인 함경북도 온성군 풍서리에서 최남단인 제주 마라도까지다. 동서로는 평안북도 신도군 비단섬에서 독도까지가 포함된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표에도 독도를 넣었다. 지난 2004년과 2005년 제작된 북한의 기념우표는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밝혔다. 우표의 부표는 독도가 정확히 포함되어 있는 한반도기로 구성했다. 한국에 반입이 허가된 '독도의 생태 환경' 우표첩 표지에는 독도를 우산도로 표기한 조선 지도인 팔도전도를 새겼다. 또 책자의 한가운데에는 '한민족의 섬-독도'라는 제목과 함께 달았다.

북한 역사학학회가 정의한 독도는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신성한 영토이며 역대 일본 정부와 국제 협약에 의해 영유권이 확인된 우리 민족의 고유 영토'다. 따라서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도 '파렴치한 만행, 우리 민족의 존엄과 주권에 대한 노골적 침해 행위'라고 줄곧 비난해 왔다.

특히 북한의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에서는 고문헌을 근거로 독도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데, 이 내용을 교과서가 아닌 주민들도 볼 수 있는 노동신문을 통해 소개해 왔다. 노동신문은 가정, 학교, 기업 등에 배포될 뿐 아니라 매일 아침 학교나 직장에서 신문을 소리 내 읽는 '독보'의 시간을 가지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머릿속에 독도가 어떤 의미로 자리하고 있을지 추정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제 '남의 땅', 그것도 '적국'의 땅이 될 상황이 되어버렸다.

사진제공=포항지방해양항만청 ⓒ News1

'백령도'·'한반도 남쪽' 삭제…'통일 지우기' 가속화

북한의 '두 국가' 선언 전까지 독도는 남북의 시선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은 올해 초부터 남한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선언하며 '남남'이 되자고 하고 있다.

지난 6월 조선중앙TV 보도 '각 도 특파기자들이 보내온 소식' 코너에선 시작 화면의 지도 그래픽을 수정했다. 도입부에 나오던 기존 그래픽에는 남한 지역이 흐릿하게나마 나타났으나 이날 보도에서는 완전히 삭제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해의 우리 영토인 백령도도 삭제하는 '디테일'까지 챙겼다.

평양 김일성광장 주석단에 새겨져 있던 한반도 지도도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7월 조선중앙TV는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서거 30주기 중앙추모대회 소식을 보도했는데, 기존에는 한반도 전체 지도가 양각 부조로 새겨져 있고 그 양옆에 '평', '양', '나라길', '시작점'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의 지도만 남았고, 글자로 '평', '양'자만 남아있는 것으로 식별된다. 돌을 깎아 새겼던 지도도 수정할 정도로 북한의 대남 '대적사업'은 고강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국영 항공사인 고려항공의 로고 등 한반도, 통일을 연상케 하는 조형물을 제거하는 '대남 흔적 지우기'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 7월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김일성 주석 사망 30주기 중앙추모대회. 주석단 아래에 있던 한반도 지도가 북한 지도로 바뀌어 있다. (조선중앙TV 갈무리)

헌법 개정 후에도 '통치 수단'으로 활용 가능할까

전문가들은 '두 국가론'에 '독도 문제'가 맞물리면서 북한 입장에서는 딜레마에 봉착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무장 투쟁의 승리로 '건국의 지도자'라는 지위를 인정받고 이를 통해 주체사상을 공고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독도'를 쉽게 건들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다.

곽길섭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북한실장은 "일본 관련된 것은 건들면 뿌리 자체를 흔드는 것이기 때문에 독도 영유권을 양보하는 식으로 접근하지 않을 것 같다"며 "특히 북한에게 대일 교섭은 외교적 활로를 모색할 수도 있는 창구이기 때문에 우선은 개정된 헌법 내용의 완전한 공개를 미루고 내부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골라 여론의 '빌드업'을 해나갈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성기영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은 역사적 전통성을 계승해 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김일성 주석의 항일무장투쟁을 민족의 뿌리로 부각하며 통치 이데올로기를 구축해 왔다"며 "남북 단절을 선언하고 거기에 따른 후속 조치들을 해나간다면 대한민국은 북한 입장에서 '타국'인데 북한이 계속 독도 문제를 끄집어 나올 것인지는 지켜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성 책임연구위원은 이어 "대내외적으로 공표한 문헌과 교과서 자료들을 다 손봐야 하므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상당히 난해한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youmj@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