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 前 납북된 고교생들 돌아오라"…정부, 첫 송환기원비 제막

김영호 "고교생 5명 전원 송환 및 납북자 문제 전향적 호응 촉구"
터너 美북인권대사 "제한 없이 가족 만날 수 있는 기회 주어져야"

24일 전북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열린 '세송이물망초 송환기원비' 제막식에서 1977년 8월 전남 신안군에서 납북된 이민교씨(당시 18세)의 어머니 김태옥 여사(92)가 줄리 터머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대사(사진 오른쪽)를 만나 아들과의 상봉을 부탁하고 있다. 2024.5.24/뉴스1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40여 년 전 납북된 고교생 5명이 한국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가족들의 마음을 담은 송환기원비가 처음으로 정부 주도로 납치 피해 현장에 세워졌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은 24일 전북 군산시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열린 '세송이물망초 송환기원비' 제막식에서 북한에 "고교생 5명 전원을 가족의 품으로 송환하고 납북자 문제해결에 전향적으로 호응해 오기를 강력히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통일부는 1977년과 1978년 납북피해가 발생한 선유도 해수욕장과 전남 신안군 홍도에 납북 고교생 송환을 기원하고, 이에 대한 국민의 공감대를 얻고자 두 곳에 세송이물망초 기념비를 세웠다. 세송이물망초는 통일부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들을 잊지 않고 생사 확인 및 무사송환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제작한 상징이다.

이날 선유도 행사에는 김 장관과 함께 줄리 터너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대사, 이신화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최성룡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장이 참석했다. 납북 피해자 가족들은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은 세송이물망초가 그려진 노란색 점퍼를 입고 행사장에 나왔다.

김 장관은 "미성년 아동을 포함한 북한의 납치·억류 문제는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여러 국적의 피해자가 존재하는 국제적 인권문제"라며 "국제사회가 연대해 북한의 납치 범죄를 집중 조명하고 책임 규명을 위한 실질적 조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김 장관은 "통일부는 5명의 소년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이 잊히지 않도록 납북 피해가 발생한 이 장소에 고교생 납북자 송환기념비를 세우게 됐다"라며 "이를 통해 납북된 국민들의 송환을 촉구하고 그 아픔에 공감하는 국민적 목소리가 확산되길 소망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일부는 납북된 국민들이 다시 돌아오는 그날까지 문제 해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터너 대사는 "516명의 납북자들이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로 남아 있다"라며 "(피해) 가족들에게 제한 없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10만 명에 달하는 전시 납북자, (전후) 납북자·억류자, 미송환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라며 한국말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통일부가 전북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에 세운 '세송이물망초 송환기원비'. 1977년 8월 납북된 고교생 5명의 송환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통일부 제공)

휠체어를 타고 참석한 이민교 씨(납북 당시 18세)의 어머니 김태옥 씨(92)는 행사 시작 전 터너 대사를 만나 "아들도 거기(북한)에 가족이 있으니 오지는 못할 것"이라면서 "죽더라도 한 번만 보고 갔으면 한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납북 피해 고교생 5명은 모두 1977~1978년 전북 군산 선유도, 전남 신안군 홍도에 여행을 왔다가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북됐다.

김영남 씨(당시 16세)는 1977년 8월 5일 군산기계공고 1학년에 재학하다 선유도에서 북한에 납치됐다. 그는 일본 납북 피해자인 요코타 메구미의 남편이기도 하다. 그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을 졸업하고 대남공작기관인 노동당 대외정보조사부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해 8월 12일 이민교 씨와 최승민 씨(당시 17세)는 평택 태광고 2학년에 재학하던 친구 사이로 홍도에 함께 피서를 왔다 납북됐다. 이듬해 8월 10일 이명우 씨(당시 17세)와 홍건표 씨(당시 17세)는 천안상고 3학년에 재학하던 친구 사이로 홍도에 함께 여행 왔다가 납치됐다.

kuko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