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건강·웰빙 욕구 반영한 북한산업미술 도안

"Design으로 보는 북한 사회" 제20편 건강과 산업미술

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 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뉴스1

(서울=뉴스1) 최희선 디자인 박사/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겸임교수 = 추워지는 날씨 탓에 건강기능식품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건강을 위한 소비흐름에도 유행이 있다. 과거엔 고단백질 보양식 위주의 가공식품 구매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엔 혈류 개선, 피로 회복, 눈 건강, 장 건강, 항산화 등 좀 더 세분화된 기능 영양제를 찾는 추세다. 소비트렌드 분석가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22'(미래의창·2021)도 즐거운 건강관리에 돈을 아끼지 않는 '헬시 플레저'(Healthy Pleasure)가 2022년 10가지 소비유행 중 하나가 되리라고 예견하고 있는데 북한은 어떨까?

'먹거리가 부족한 북한에서 건강관리가 무슨 문제일까' 하고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북측의 산업미술전시회를 보면 과거 1970~80년대부터 최근까지도 건강증진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 식품과 의약품 개발에 사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 10월에 개최된 북한 국가산업미술전시회에선 제약 상품 전시공간을 특별히 마련했고, 북성제약소의 '구심환' 등을 조선중앙TV를 통해 특별히 소개하기도 했다.

북한 황해북도 체신관리국 소속 김명진의 '방울알약제조기 도안'(왼쪽). 2015년 4월 국가산업미술전시회에 출품된 이 기계 디자인은 고려약(한약)과 신약용 알약을 만들기 위한 장치에 대한 것으로서 디지털 숫자식 온도조절 기능을 갖추고 있다(조선산업미술 2016년 제1호). 사진 오른쪽은 올 10월 열린 북한 국가산업미술전시회의 약품 전시 공간. 북성제약소의 '구심환'이 보인다(조선중앙TV '당 창건 76년 기념 국가산업전시회장을 찾아서(2)' 캡처) ⓒ 뉴스1

더욱이 북한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전통 한방인 고려약 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평양시, 함경북도 등 각 지방 고려약 공장이 생산 공정을 현대화하고 약 개발뿐 아니라 다양한 건강식품들도 생산하면서 앞으로 디자인전시회에 상표, 포장, 광고 도안 등을 더 많이 출품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 산업미술에서 주민 건강증진에 대한 관심은 식품 분야에서 잘 볼 수 있다. 북한의 식품포장엔 '천연 건강식품'을 강조하기 위해 핵심 원료의 성분을 이미지로 묘사하는 디자인적 특징이 있다. 군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삼일포특산물공장이 좋은 사례인데, 이 공장에선 각 지방 토산물로 만든 가공식품(육류·어류·채소류·과일류)과 제과, 꿀, 차, 주류를 생산하며 포장지에 정밀한 내용물 그림을 그려 구매자가 성분을 직관적으로 알도록 디자인한다.

국제적 소비 경향인 '헬시 플레저'는 단순히 영양제를 먹고 건강한 식단을 찾는 게 아니다. '헬시 플레저'에선 심신의 휴식과 즐겁고 편안한 삶의 방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요즘 마사지 기계, 운동과 쉼의 공간이 미용·식품 못지않게 중요시되는 것처럼 북한에서도 건강을 위한 의료 보조기구와 피로를 풀 수 있는 공간에 대한 디자인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 삼일포특산물공장의 '참나무버섯' '은행잎차'의 상업광고. 포장에 보이는 '삼일포' 마크는 2019년 8월5일 국제상표로 등록됐다. (2020년 연풍상업정보기술사 홍보물) ⓒ 뉴스1

북한 금강산무역회사에선 적외선기술과 생물공학기술을 응용해 의료보조기구를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에선 '입 냄새 및 이돌 제거기' 같은 생활 기구를 비롯해 2017년엔 전신 혈액순환 장애를 개선하는 치료기 '발목띠' '휴대용 치료기' '경추관절띠'를, 2018년엔 '눈 피로 회복띠' 등을 개발해 상품으로 내놨다.

올해 북한 국가산업미술전시회에선 '우리 식, 우리 힘, 우리 손으로'란 도시공원 조경 장식도안을 볼 수 있었다. 함경북도 산업미술국 소속 김철웅의 '지붕 녹화 장식도안'은 건물 지붕을 활용해 잔디와 나무가 있는 근로자 휴식공간을 마련하고 태양열 에너지를 활용하는 친환경 건축의 특성을 보여줬다.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집권 이후 도시민, 특히 평양주민들의 휴식·여가생활을 강조하는 것과 이 디자인에 관련이 있을 것이다.

'트렌드 코리아 2022'에서 김난도 교수는 자기애와 차별화된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를 눈여겨봤다. 그는 MZ세대들이 헬시 플레저의 저변을 넓히는 요인이 될 것이라 전했다. 북한에서도 조직보다 '개인' 취향에 집중하고 문화에 도전적인 2030 '장마당 세대'가 건강 상품 소비세대 교체의 주역이 될까? 앞으로 북측의 변화가 궁금해진다.

북한 금강산무역회사의 '휴대용 치료기'(왼쪽)와 '눈 피로 회복기 7.1'(2018) 및 '목띠 7.1'(2017) (2020년 연풍상업정보기술사 홍보물)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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