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 "그럴수도 있지?"...수사 경찰관 "술 취해 딸 속옷에 손 좀 넣었다고 뭐" 막말
서울시 서울시 아동학대예방센터 사례집 발간
(서울시 제공) © News1 박태정 기자
</figure>친부의 폭력과 성추행을 피해 서울의 한 양육시설에서 생활하는 김소영(가명·여·17)양은 아버지 김호철(가명·47)씨가 자신을 찾아올까봐 아직도 겁이 난다고 했다. 김씨의 자동차와 비슷한 차만봐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다.
김양의 악몽은 잦은 폭력으로 이혼했던 아버지가 지난해 무작정 집으로 돌아와 동거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그 이후의 일을 떠올리기도 싫다고 몸서리쳤다.
딸에 대한 김씨의 학대행위는 올해 초 아내 황서연(가명·43)씨와의 부부싸움 도중 위협하며 던진 칼이 김양의 허벅지에 꽂히면서 황씨의 신고로 드러났다.
만성 알콜중독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 황씨도 김양을 보호할 수는 없었다. 알콜중독에 우울증까지 더해져 김씨에 대한 의존성이 강한 상태라 평소에는 김씨의 학대행위를 방치하기도 했다.
사고 소식을 접한 동주민자치센터는 관할 구청에 알렸고 아동학대예방센터와 지역아동복지센터와 정신보건센터, 아동복지센터 등 유관기관 담당자들이 모여 대책마련에 나섰다.
조사과정에서 김양은 아버지가 수시로 폭력을 휘둘렀으며 우연을 가장한 채 의도적으로 허벅지를 만지고 술에 취해 자신의 속옷 안으로 손을 넣는 등의 신체학대와 성추행이 잦았다고 주장했다.
김양은 친부의 성추행과 폭행으로 인한 수치심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머니 황씨의 안전이 걱정돼 가출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의 신변이 확보되고 병원에 입원할 수 있다면 아버지를 신고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아홉 살 동생은 너무 어렸고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는 외할머니와 외삼촌도 아버지 김씨로부터 협박을 당해 개입을 꺼려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유관기관들은 황씨가 심하게 술에 취해 있을 때 경찰에 신고해 긴급 강제입원시키는 동시에 김양을 긴급피난처로 피신시키고 상담과 보호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버지 김씨를 김양과 격리시키는 과정은 곳곳에서 장벽에 부딪히며 해결을 어렵게 했다. 경찰에 상담내용을 담아 고소장을 접수했지만 담당형사는 가정내 문제라며 내키지 않는 듯한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이후 김양의 진술을 녹화해 경찰에 건냈지만 경찰은 당사자가 직접 경찰서를 방문해 조사받도록 종용했다.
이 과정에서 담당형사는 "딸에 대한 사랑으로 뽀뽀를 할 수도 있고 술을 먹으면 부인인줄 알고 손을 옷 속에 넣기도 한다"는 등의 막말을 쏟아내 관계자들을 경악케 했다.
결국 김씨는 칼을 던져 딸에게 상해를 입힌 것만으로 기소돼 검찰에 넘겨졌지만 이 사건에 관여한 지역아동복지센터 측은 김씨로부터 여러차례 협박전화를 받기도 했다.
다행히 가정법원 담당판사는 사건의 위중함을 인식하고 김양을 위해 어떤 처분이 필요할지 센터 쪽으로 연락이 왔고 아버지 김씨에 대해 친권 제한과 구금 등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양을 보호하던 센터 측은 향후 김양이 성장한 후를 고려해 친권 제한은 과도하다고 판단하고 구금 역시 김씨의 생계를 위협하는 일이라 오히려 악의를 품을 수 있어 선처해 달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아버지 김씨에게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해 6개월 보호관찰처분을 내렸다. 김양에게는 아동복지법이 적용돼 장기보호 조치가 이뤄졌다.
아버지 김씨가 모르는 양육시설로 가기 위해 김양이 학교를 옮기는 과정도 녹록지 않았다. 다니던 학교를 자퇴해야 했지만 학교에서는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학칙을 이유로 자퇴처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센터 측은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동의 없이도 전학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학교에 알렸지만 학교 측은 부모의 민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결국 입원한 어머니 황씨에게 자퇴 동의서를 받아 처리해야 했고 김양의 전학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아동학대 사건을 담당한 서울시 아동학대예방센터 이선민 상담사는 "가정 내 아동학대는 '부모가 양육하다가 그럴 수 있지'라는 시각이 팽배해 있어 아동의 생사가 걸린 문제인데도 기관의 안위부터 걱정하는 곳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씨는 "이런 사례를 접하면서 우리가 싸우는 대상이 학대 행위자가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있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과 선입견, 가부장적인 가치관일 때가 많다"며 "아동학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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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아동학대 신고접수 현황. © News1
</figure>◇아동학대 신고건수 2년새 22% 넘게 증가
아동학대 신고는 해마다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시내 8개 지역에 운영되고 있는 서울시아동학대예방센터에 올해 들어 11월까지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1411건으로 2010년 전체 신고건수 1153건보다 258건(22.4%) 늘었다.
특히 응급 신고건수는 2010년 60건에서 올해 203건으로 3.4배나 증가했다.
올해 아동학대 신고 가운데 실제 학대로 판정된 경우는 591건으로 41.9%였고 잠재위험사례도 60건(4.3%)으로 나타났다.
피해아동 591명 가운데 여자아이가 338명(57.2%)으로 절반을 넘고 학대유형도 '신체' 66건, '성적 학대' 24건 등 폭력적 성향이 강해 아이에게 커다란 심리적, 육체적 상처를 남기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서울시 아동복지센터는 이 같이 시내 아동학대예방센터에서 근무하는 실무자들이 현장에서 접한 사례를 담은 '2012 아동학대 사례 연구집'을 발간했다.
사례 연구집은 아동복지센터 홈페이지(child.seoul.go.k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pt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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