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쌀 천사·돼지저금통 깬 초등생…새해 추위 녹이는 '기부천사'

14년째 매해 쌀 300포씩 기부…총 4200포·84톤
기부나눔 릴레이…94세 어르신 2000만원 기부

해마다 천사의 쌀이 도착하는 새벽이면 월곡2동주민센터 앞은 공무원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 산책하던 주민, 군인 등이 입김을 내며 쌀을 나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서울 성북구 제공) /뉴스1 ⓒ News1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새해 연초부터 서울 곳곳에서 기부 천사들의 소식이 들려오며 갑진년을 따뜻하게 데우고 있다. 14년 동안 무려 84톤의 쌀을 기부한 '얼굴 없는 쌀 천사'부터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은 돼지저금통을 기부한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이들의 기부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13일 서울시와 성북구 등에 따르면 올해도 성북구 '얼굴 없는 쌀 천사'는 300포의 쌀을 기부하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 천사는 2일 오전 9시쯤 성북구 월곡2동 주민센터로 전화를 해 "어려운 이웃이 조금이나마 든든하게 명절을 날 수 있도록 쌀을 보내니 잘 부탁한다"는 말을 전했다.

이후 300포의 쌀이 10일 새벽 월곡2동 주민센터에 전달됐다. 그는 2011년 시작해 올해로 14년째 매해 연초 쌀을 기부하는 '얼굴 없는 쌀 천사'다. 매년 쌀 300포씩을 기부, 올해까지 그가 기부한 쌀은 총 4200포, 총 84톤에 달한다. 이를 환산하면 2억1700만원이다.

10여년째 이어지는 그의 선행에 매년 쌀이 오는 날은 이제 월곡2동의 연례행사가 됐다. 해마다 천사의 쌀이 도착하는 새벽이면 월곡2동주민센터 앞은 공무원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 산책하던 주민, 군인 등이 입김을 내며 쌀을 나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올해도 100여명이 쌀을 내리며 천사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같은 선행은 성북구 전체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 4일에는 자신의 초등학생 딸이 모은 성금을 기부하고 싶다며 40대 한 여성이 안암동주민센터를 방문했다. 여성은 '우리 가족 이삭줍기'라고 적힌 파란색 돼지저금통 안에 담긴 9만9740원을 주민센터에 기부했다.

벌써 3년째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는 이 여성은 "많은 돈은 아니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고 당부하고 자리를 떴다. 담당 공무원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부신청서 작성을 권유했지만 여성은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 마음을 모은 것이라며 이름과 연락처 등을 남기지 않았다.

길음 1동에서는 초등생 예원·지원 자매가 한 해 동안 저금통에 모은 돈으로 쌀과 라면을 구매, 주민센터에 기부했다. 벌써 3년째다. 이밖에 길음동 한 태권도장에서는 3주간 100여명의 어린이들이 어려운 이웃과 나눌 라면 20박스를 모아 기부했고, 상월곡실버센터 어르신들은 용돈 1만원씩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나눔에 동참했다. 지역 어린이집 어린이들도 돼지저금통을 모아 주민센터에 전했다.

2000만원의 성금을 기부한 서울 동작구 사당4동의 김희수 어르신. (서울 동작구 제공) /뉴스1 ⓒ News1

강서구에서는 '기부 챌린지'가 확산하고 있다. 우장산동 주민센터에서 '2024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기부나눔 릴레이'에 지금까지 27명의 기부자가 참여해 1380만원이 모였다.

기부나눔 릴레이는 선(先)기부자가 다음 기부자를 지정해 기부를 이어가는 방식으로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모티브로 얼음 대신 리본이 떨어지는 버킷 챌린지 퍼포먼스로 진행된다.

강서구 소재 행복한교회는 지역 내 환아를 둔 세 가정을 돕기 위해 연초 성금 1200만원을 구에 전달했다. 이 성금은 지난해 교회 신도들이 정성껏 마련한 성탄 헌금 전액이다.

성금은 뇌성마비와 지적·언어 중복장애를 가진 아동의 수술비, 뇌성마비와 희귀질환인 웨스트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동의 유모차형 휠체어 구입, 뇌성마비 아동의 재활치료비 등에 사용된다.

복음보청기 강서센터는 난청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을 위해 보청기 2대를 기증했다. 이 후원으로 청각장애등급 기준에 가까스로 미치지 못해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인 어르신 두 명이 보청기를 착용할 수 있게 돼 세상과 더욱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졌다.

동작구는 지역 내 저소득 주민을 돕기 위한 기부 운동 '2024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 캠페인을 통해 13억원이 넘는 돈을 모았다.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많은 이들이 기부에 동참했는데, 최근에는 동작구 사당4동에 거주하는 92세의 김희수 어르신이 동 주민센터를 찾아 2000만원을 기부했다. 불편한 걸음에도 자녀와 함께 방문해 직접 후원금을 건넨 어르신은 "저소득 독거 어르신과 한부모가정을 위해 기부금을 써달라"고 말했다.

이밖에 동작구에 본사가 있는 부광약품(003000)과 농심(004370) 등 각종 단체와 주민들도 나눔에동참했다. 이로 인해 모금액은 목표액 13억원을 훌쩍 넘어, 13억6000만원을 기록했다. 모금된 기부 금품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어려운 이웃과 소외된 위기 가구를 지원하는 데 전액 사용될 예정이다.

박일하 동작구청장은 "도움이 절실한 이웃에 온정을 베풀어 주신 주민들과 단체에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사업을 발굴하겠다"고 말했다.

jung9079@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