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또는 이웃'…길고양이와 공존하기<4>
대한민국에서 동물로 산다는 것 -유기동물
지자체 해법찾기 부심…한강맨션 TNR 사업 '주목'
- 차윤주 기자
(서울=뉴스1) 차윤주 기자 = <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사람이 던져 준 음식을 먹고 있는 길고양이(자료사진)© News1 차윤주 기자
</figure>지난해 7월 인천에서 발생한 '캣맘 폭행사건'은 길고양이에 대한 우리 사회 극과 극의 시선을 보여준다. 길고양에게 밥을 줬다는 이유로 50대 여성을 때리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거꾸로 처박아 전치 4주의 상처를 입힌 폭행범은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혐오와 측은 '극과 극''도둑고양이'로 불리듯 음식물 쓰레기를 헤집고 번식기에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는 길고양이는 흔히 불쾌함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힘겨운 길 생활로 평균수명이 3년에 불과(집고양이 약 15년)한 이들을 먹이고 보살피기 위해 자비를 들여 '캣맘'을 자처하는 이들도 있다.
길고양이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는 '고양이를 잡아가 달라'는 증오성 민원과 '밥이라도 편히 먹이게 해달라'는 호소 사이에서 골머리를 앓는다. 길고양이에 대한 호오는 이렇듯 크게 갈리지만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어차피 공존할 수밖에 없다면 개체수를 줄이고 이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는 몇년 전부터 길고양이 중성화 후 방사(TNR)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TNR은 주택가에서 자생하는 길고양이를 포획한 뒤 불임수술을 하고, 잡은 곳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사업이다. 이렇게 돌아간 길고양이는 귀끝을 1㎝ 정도 잘라 표식을 남긴다.
영역동물인 고양이는 자기 영역을 지키며 일생을 사는데, 한 영역에서 개체가 사라지면 타 영역의 고양이들이 먹이를 찾아 와 개체수가 되레 느는 '진공효과'가 발생한다. 안락사로 길고양이 수를 줄여도 그때 뿐, 오히려 포획·안락사에 따른 비용과 사회적 갈등만 커지고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온다.
따라서 불임 수술로 무분별한 번식을 막고, 원래 살던 영역으로 돌아가 건강히 제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지자체의 TNR 사업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2008년 TNR 사업을 시작한 서울시(시와 자치구가 50:50 재정 부담)의 경우 지난해 2억5000만원을 들여 5882마리를 중성화했고, 올해는 4억4560만원을 배정했다.
◇TNR, 민원 대응 위주·사후관리 안돼그러나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자체가 수억원을 들여 TNR 사업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민원 해소를 위한 임시방편 식이라 효과는 미미한 실정이다.
서울시가 올해 발주해 7월31일부터 8월14일까지 실시한 '길고양이 실태조사' 용역에 따르면 서울시 길고양이 개체는 최소 17만2059~22만323마리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TNR 대상이 되는 길고양이는 민원으로 붙잡혀 온 고양이들이 대다수다. 이에 따라 돌아간 뒤 영역을 계속 지킬 수 있는 건강한 고양이 보다 포획이 쉬운 약한 고양이들에게 TNR이 집중된다. 수술 후 회복을 감안해 3개월령 이상, 임신이나 수유 중이 아닌 고양이에게 실시하는데, 임신이나 수유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사후 관리도 문제다. 수컷 고양이는 하루, 암컷은 사흘 정도 회복기간을 거쳐 방사되는데 수술이 끝난 고양이를 기계적으로 풀어놓는 것은 유기나 다름 없다. 수술 후 지속적으로 먹이를 주고 상태를 관리해야 이들이 다시 건강하게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5월 지자체 처음으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도입한 서울 강동구를 제외하면,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캣맘들이 '알아서' 밥을 주는 것이 전부다. 마리당 약 11만원, 지자체가 매년 수억원을 들여 TNR 사업을 하고도 사후 관리를 안해 큰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다.
TNR이 없는 먹이주기도 길고양이 문제를 악화시킨다. 먹이 공급이 늘면 필연적으로 개체수가 늘 수밖에 없다. 밥이라도 배불리 먹이겠다는 측은함만으로는 길고양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반드시 TNR을 병행해야 한다.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펴낸 '길고양이 핸드북'에 따르면 암컷 길고양이는 1년에 2~3회 임신해 한번에 4~5마리를 출산하는데, 절반이 넘는 아기 고양이가 생후 6주 안에 전염병과 영양실조, 로드킬 등으로 죽는다. 잦은 출생·사망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br><figure class="image mb-30 m-auto text-center border-radius-10">
</figure>2006년 한강맨션 아파트 지하실 폐쇄 당시 감금된 고양이(제공:한강맨션생명사랑모임)© News1
◇시민 주도형 TNR '한강맨션'길고양이 문제 해법에는 '한강맨션 고양이' 사례가 주목할 만하다.
2004·2006년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에선 울음소리와 냄새로 민원이 발생하자 아파트 지하실에 길고양이를 산 채로 가두고 폐쇄한 학대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지역 캣맘들이 나서 '한강맨션생명사랑모임'을 조직하고 2006년 8마리를 시작으로 2007년 45마리, 2008년 51마리 등 지난해 10월까지 221마리를 꾸준히 중성화했다. 이와 동시에 중성화가 불가능한 어린 고양이(130마리)는 임시보호를 통해 입양을 보냈다.
당시 90~100마리였던 길고양이는 현재 70마리 수준으로 30% 가까이 줄고,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 기간 캣맘들(9437만원)과 용산구(221만원)가 지출한 비용은 1억1647만원에 달하지만 이제 성묘의 90% 이상이 중성화가 돼 더이상 큰 돈은 들어가지 않는다.
아파트 운영위와 캣맘들 간 고소·고발 등 극에 달했던 주민 갈등도 줄어들었다.
한강맨션 TNR 사업을 주도한 차명임 씨는 "예산이 한정된 만큼 튼튼한 성묘를 대상으로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TNR 사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동네 길고양이 생태계를 잘 아는 캣맘들이 나서면 번식력이 좋은 고양이를 잡아 수술하고, 사후 관리도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길고양이 민원 해법찾기에 분주한 서울시와 경기도 고양시 등에선 최근 지역별 '캣맘 협의체' 구성 등이 논의되고 있다. TNR 사업과 사후 관리를 주도할 캣맘을 양성화하는 것이 시급하지만 한강맨션 사례에서 보듯 캣맘들의 자발적 참여와 길고양이 혐오 주민에 대한 설득은 물론, 시간과 돈이 필요한 문제라 갈 길은 멀다.
TNR 사업을 앞서 실시한 선진국에 따르면 TNR이 성과를 내려면 전체 개체수의 최소 70% 이상, 매년 15% 이상을 중성화해야 한다. 서울의 길고양이를 20만마리로 가정해 한꺼번에 70%를 잡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한마리당 11만원을 적용하면 154억원이라는 예산이 필요하다. 이에 개체수가 많고, 지역 캣맘들의 봉사가 활발한 몇몇 군락을 정해 집중 TNR을 실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서울시 동물보호과 관계자는 "길고양이 문제는 돈만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지자체의 보호 아래 캣맘들이 자발적·주도적으로 나서고 자치구와 시민단체가 이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chacha@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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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애완동물'이 '반려동물'로 승화하고 있는 우리사회에서 동물권(動物權)에 대한 인식이 발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인간과 짝이 돼 살아간다'는 의미의 '반려동물'에게도 인권(人權)과도 같은 개념의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뉴스1은 이같은 시대의 흐름속에서 '대한민국에서 동물로 산다는 것'이란 주제의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183만마리의 동물들이 실험실에서 사라지고, 유기동물 10마리 중에 1마리만 집에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동물권'이 필요한 부분은 실험동물과 유기동물이다. 뉴스1은 '동물실험 윤리(上)'와 '유기동물 보호(中)' '동물권(下)' 등 세차례로 나누어 보도하는 이번 기획을 통해 우리나라 동물권의 현주소를 짚어본다.[편집자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