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암흑 속 100m 12초 질주…시각장애 김초롱의 국가대표 도전

4년 전 시력 상실, 육상 접하며 다시 세상 밖으로
2년 만에 국내무대 평정…목표는 패럴림픽 출전

질주하는 김초롱(오른쪽)과 가이드러너 정수효.(충북장애인체육회 제공)2024.11.15./뉴스1

(청주=뉴스1) 박건영 기자 = 캄캄한 암흑 속을 전력 질주한다. 시력을 잃어 앞은 볼 수 없어도 꿈을 향해 내딛는 발걸음만은 누구보다 거침없다.

국내 최고의 시각장애 스프린터 김초롱(23·충북장애인체육회)의 얘기다.

김초롱은 앞을 보지 못하는 1급 시각 장애인이지만, 100m를 12.06초에 주파한다. 육상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그는 불과 2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시각 장애인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김초롱이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 건 약 4년 전 일이다.

선천적으로 앓았던 각막 혼탁 증세가 심해지면서 눈 앞이 점차 흐릿해지더니 어느 순간 암흑 속 세상에 던져졌다.

당장 화가 났지만 그보다 앞날이 더 캄캄했다.

하루라도 빨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학창시절 몸 담았던 시각장애인 스포츠 '골볼'에 다시 뛰어들었다. 하지만 단체 스포츠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골볼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과 같았다.

한동안 좌절감에 빠져 있던 김초롱을 세상 밖으로 다시 끌어낸 건 육상이었다.

지인의 권유로 육상 트랙을 밟게 된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두 눈 대신 몸 끝에서 느껴지는 감각으로 두려움을 이겨내고 발을 내딛었다.

처음엔 기록이 좀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주변의 기대도 크지 않았다.

그러나 김초롱은 꾸준히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다.

훈련하는 김초롱.(충북장애인체육회 제공). /뉴스1

김초롱은 육상을 시작한지 반년 만에 처음으로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비로소 빛을 보기 시작했다. 신인의 몸으로 4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육상 T11(전맹) 100·200·400m에 출전해 은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좋은 성적을 거두니 의욕이 불타기 시작했다. 기록을 단축해 금메달에 도전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뜻밖의 행운도 따랐다. 이듬해 충북장애인체육회로 소속팀을 옮긴 김초롱은 100m를 10초 대에 뛰는 육상 선수 출신 가이드러너 정수효(25)와 발을 맞추게 됐다.

김초롱은 "해외와 달리 국내에선 전문 가이드러너가 흔치 않은데, 저는 좋은 가이드러너를 만나 운이 좋았다"며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은 물론 뛰는 방법도 세심하게 가르쳐줘 기록 단축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목을 끈 하나로 묶고 매일같이 4~5시간씩 목표를 향해 뛰었다. 고된 시간이었지만 기록은 점점 단축됐다.

김초롱은 마침내 지난달 열린 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금메달 3개를 따냈다. 100m 12.06초, 200m 25.01초, 400m 57.22초를 기록하며 한국 신기록을 새로 썼다.

한계를 뛰어넘는 김초롱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그의 목표는 장애인 선수들의 꿈의 무대인 패럴림픽에 서는 것이다.

그러려면 먼저 현재의 100m 기록을 0.16초 이상 더 앞당겨야 한다. 100m 11.90초 기록은 패럴림픽 출전권의 하한선이다.

이 기준을 뚫고 국가대표에 입성해 국제 대회 출전 경험을 쌓아야만 4년 뒤 열리는 LA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

김초롱은 또 한번의 거대한 목표와 가까워지기 위해 요즘도 매일같이 칠흙같은 어둠 속을 질주한다.

그는 반드시 국가대표의 꿈을 이뤄 자신과 같은 시각 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김초롱은 "앞을 볼수는 없어도 꿈을 이룰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육상을 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후배가 있는데, 그 친구가 포기하지 않고 선수가 돼 저와 함께 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싶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육상선수 김초롱./뉴스1

pupuman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