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수해 1년 르포] 아직도 복구작업 중…"불안해서 잠도 안 와"

수해 컸던 강내면·오송읍 주민들 "올해 비 많이 온다는데…"

미호강 제방 공사 현장. /뉴스1

(청주=뉴스1) 박건영 기자 = "올해도 비가 많이 온다던데…불안해서 잠도 제대로 못 이룹니다."

지난해 여름 유난히 거세고 요란했던 비는 반나절도 안돼 미호강을 사이에 둔 청주 강내면과 오송읍 일대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100년에 한 번 내린다는 폭우는 안일하고 무방비한 대응을 틈타 더욱 커져 마을에 큰 피해를 입혔다.

계절이 바뀌고 해가 지나 다시 찾은 두 마을의 풍경은 겉보기엔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모습을 되찾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주민들의 아픔은 1년 전 그대로 남아있었다.

◇장마철 코 앞인데…공사는 아직 '진행중'

장마를 앞두고 23일 찾은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석화2 배수장.

지난해 7월15일 강내면의 유일한 배수장인 이곳의 펌프와 배전반이 빗물에 잠겨 작동을 멈추면서 빗물을 빼내지 못해 마을의 침수 피해를 키웠다.

배수가 되지 않은 빗물은 한동안 마을에 머물며 주택과 상가 197곳과 농경지 69㏊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석화2배수장 게이트 펌프 설치 공사 현장. 2024.6.23.ⓒ 뉴스1 박건영 기자

수해 이후 농어촌공사와 청주시는 복구작업과 보강 공사에 나섰으나,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사 진행상황은 더디기만 하다.

배수 용량을 늘리기 위한 게이트펌프 설치 공사는 아직 모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기초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이마저도 전날 내린 비로 공사를 중단한 상태였다. 이곳에 펌프와 추가 설비가 들어서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듯 보였다.

실제 청주시는 해당 공사가 우기가 끝나는 7월 중순쯤은 되어서야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물에 잠겨 먹통이 됐던 펌프와 배전반의 복구 작업은 지난주 겨우 끝났지만, 주택과 상가가 밀집해있는 탑연리 일대가 상습 침수지역인 강내면 중에서도 저지대인 까닭에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마을 주민 이모 씨(58)는 "공사가 예상보다 너무 늦게 시작된 것 같다"며 "6월 중엔 공사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하더니 올해도 맘 편히 보내기엔 글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같은날 미호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수해를 입은 오송읍 주민들도 불안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수해 당시 삽시간에 마을로 들이닥친 강물은 주택과 축사, 농경지 등 주민들의 터전을 헤집어 놓았고, 인근 궁평2지하차도로 유입되면서 30명의 사상자를 냈다.

그러나 기존 제방 복구와 별개로 마을 바깥쪽으로 1.6㎞ 길이의 제방을 이중으로 두르는 작업은 아직도 완료되지 않았다. 좁은 물길을 넓히고 강에 쌓인 돌과 흙을 파내 수위를 낮추는 준설작업은 올해 우기가 지나서야 시작된다.

작년 수해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미호천교 아래의 임시제방이 복구됐음에도 주민들은 못마땅해하는 모습이었다.

장찬교 궁평1리 전 이장(71)은 "올해는 비가 더 많이 온다는데, 1년이 다 되도록 공사를 끝내지 못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괜히 공사를 급하게 마무리하려다 신설 제방도 부실하게 지어지는 것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하소연했다.

◇더딘 복구작업에 커지는 불안

더딘 복구작업에 다시 여름을 맞은 주민들의 속은 바싹 타들어 간다.

지난 18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에서 만난 조필준 씨가 작년 수해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2024.06.24./뉴스1

강내면 탑연리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조필준 씨(58)는 얼마 전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배수장 공사현장을 찾아가본다고 했다.

작년에 고장난 펌프와 배전반은 복구했는지, 배수장 용량 증설 공사는 언제 끝나는 것인지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다.

하지만 6월 안에 공사 마무리는 어려울 것이라는 말에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조 씨는 25년 동안 모아온 노후자금으로 지난해 족발집 문을 연 지 4개월 만에 수해를 입었다. 그의 가게가 지하 1층에 위치해 있던 탓에 물건조차도 제대로 건지지 못했고, 복구비용으로 대출을 떠안게 됐다.

엎친 데 덮친격으로 수해 이후 상권까지 침체되면서 손님들의 발길도 예전만큼 닿지 않고 있다.

조 씨는 "지난해 수마는 저를 비롯한 주민들의 터전을 빼앗아갔지만, 하소연할 곳이 아무데도 없다"며 "보상은 고사하고 재발방지책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하루하루가 불안한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오송읍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정 모 씨(50대)도 여름이 걱정되기는 마찬가지다.

작년 한 해 농사를 그대로 망쳤다는 정 씨는 비 예보가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비닐하우스를 찾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작년과 같은 수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씁쓸해했다.

정 씨는 "개인이 제 아무리 호우 대비를 잘 해놓는다고 하더라도 작년과 같이 강물이 넘치는 것엔 손 쓸 재간이 없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지자체에서 대책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upuman7@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