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오창 후기리 소각장 발단 '이전 협약서' 무효 소송도 안 했다

행안부·감사원 '하자 협약' 해석에도 미온적
법원 "협약 미이행 신뢰보호원칙 위반" 판단

청주시와 옛 이에스청원 한 협약서. / 뉴스1

(청주=뉴스1) 박재원 기자 = 충북 청주시가 오창 후기리 소각장 문제의 발단이 된 '이전 협약서' 무효 확인 소송을 하지 않아 항소심에 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행정안전부와 감사원에서 '하자 협약'이라고 인정했는데도 안일하게 대응해 결국 재판에서 패소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전고법 청주재판부 행정1부는 지난 1일 에코비트 에너지청원(옛 이에스청원)이 청주시장을 상대로 낸 '파분쇄 시설과 소각시설 설치를 위한 도시관리계획결정 입안제안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가 원심을 뒤집고 업체의 손을 들어준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신뢰보호원칙'이다.

앞서 이승훈 전 시장과 옛 이에스청원은 2015년 3월 '오창지역 환경개선 업무 협약서'에 서명했다.

협약은 이에스청원이 오창과학산업단지에 추진·운영하는 폐기물 소각시설과 매립장을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고, 시는 이전사업에 적극 협력하면서 업체의 기존 소각시설 등의 용지를 매입한다는 내용이다. 상호 신의 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이를 이행하기로도 약속했다.

재판부는 "행정청이 개인 또는 법인과 사이에 명시적인 협약을 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청은 자신의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그 협약의 내용과 취지대로 이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며 "협약을 신뢰해 소각시설과 매립장 이전사업을 추진한 데 있어 (원고의)귀책사유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에스청원은 협약에 따라 사업부지를 이전했는데, 시는 신뢰를 깨고 도시관리계획결정 입안제안을 거부했다는 의미다.

이에스청원이 옥산면 남촌리에서 폐기물처리 사업을 접고, 오창읍 후기리로 소각장을 이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한 장짜리 협약서 때문이다.

그런데 협약서 자체가 무효라는 해석이 있었다.

행안부는 2019년 9월 "시의회 사전 의결 없는 업무협약서는 지방의회 의결권을 침해한 중대한 하자로 사료된다"고 해석했다.

당시 행안부에 질의한 이영신 시의원은 "원고에서 협약서 내용을 근거로 시의 재량권 일탈을 주장함에도 전직 시장이나 시청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무효 확인 소송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청주시의 협약이 부적정하다는 감사원 감사결과. / 뉴스1

감사원 역시 2020년 11월 협약이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익감사 청구로 진행된 감사에서 감사원은 "시는 임의로 판단한 후 시의회 동의를 받지 아니한 채 이전 협약을 했다. 소각장 이전협약의 약정(소각장 및 진입로 부지 매입 추진)은 그 금액과 시기를 정확히 예상할 순 없지만 향후 재정부담이 수반되는 '예산 외의 의무부담'에 해당해 위법·부당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각장 이전협약 체결 부적정 이유로 시에 주의 처분을 내렸다.

이 같은 유권 해석이 있었음에도 시는 이에스청원을 상대로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하지 않았다.

법적 효력이 있는 판단이 아니라서 이를 그대로 인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음에도 안일하게 대응한 것이다.

당시 무효 확인 소송을 통해 협약 자체가 절차상 성립할 수 없는 흠결을 내포했다는 법적 판단만 마련했어도 이번 항소심 판결을 유리하게 끌어낼 가능성도 있었다.

협약 자체가 원칙적으로 무효다 보니 이를 근거로 한 소각장 이전은 성립될 수 없고, 도시관리계획결정 입안제안을 거부해도 행정청의 고유 재량권으로 인정받을 수도 있었다.

다른 자치단체는 비슷한 소송에서 승소했는데, 청주시는 안일한 대응으로 역전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이다.

앞서 상주시와 금산군은 의료폐기물처리 소각장 도시·군관리계획결정 입안제안 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ppjjww12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