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전기차 화재…48개 기관 '최악' 가정해 '최선'으로 구조

행안부, 전주 아파트서 올해 4번째 '레디코리아' 훈련
이상민 장관 지휘 하에 55분 만에 완진

20일 전주시 덕진구 팔복LH아파트 및 더 메이호텔에서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전북소방본부, LH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유관기관합동 전기차 화재 대응 제4차 READY Korea 훈련에서 소방대원들이 부상자를 이송하고 있다. 2024,11,20/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비상 상황입니다. 103동 지하 주차장에서 전기차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많이 나고 있습니다. 주민께서는 계단을 통해 즉시 지상 대피 장소로 대피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전주=뉴스1) 오현주 기자 = #. 20일 오후 12시 30분. 전주시 덕진구 팔복 LH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펑' 소리와 함께 보라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1분 뒤 아파트 비상 방송이 나오자, 주민들은 잠옷에 슬리퍼 차림으로 급하게 밖으로 나왔다.

이날 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의 배터리가 발화됐으나, 스프링클러가 작동하지 않아 인근 자동차와 설비에 이어 아파트 단지 전체로 화재가 확산했다.

심지어 강한 바람으로 인근 더메이 호텔까지 불이 번졌다. 이로 인해 10명이 숨지는 등 사상자가 120명 발생했다. 재산피해는 100억원 수준이었다.

이는 행정안전부가 소방청,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한국토지주택공사 등 48개 관계기관과 진행한 올해 4번째 '레디 코리아'(Ready Korea) 훈련 상황이다.

10월 인천시 청라동 아파트 화재 등 최근 전기차 화재가 잇따르자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기차 충전 중 화재가 발생한 것을 가정해 진행됐다.

지난해 처음 시작된 '레디코리아 훈련'은 발생 양상이 복잡한 복합재난 및 피해 규모가 증폭된 대형 재난을 가정해, 행안부 주관하에 민관이 함께 재난 대응 체계를 점검하는 합동 훈련이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전기차 배터리'서 화재 가정…아파트·인근 호텔 확산

지하 주차장에서 시작한 화재가 아파트 단지 전체로 확산되는 모습. 2024. 11.20. 오현주 기자

이번 훈련은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충전 중이던 전기차가 배터리 과충전으로 인한 열폭주로 불이 난 것에서 시작했다.

마침 주차장 내 스프링클러는 고장 나 작동하지 않았다. 불은 순식간에 전기차 주변 차량과 아파트 전체로 퍼졌다. 이 아파트는 무려 555세대가 입주한 곳으로, 지상 140여 대·지하 289대까지 주차가 가능했다.

이날 관리 사무소 직원은 화재가 발생한 지 1분 만에 소방에 즉시 신고했고, 아파트 단지 자위 소방대는 입주민들의 대피를 돕고 초기 화재 진압을 시도했다.

자위 소방대의 지도에 따라 입주민들은 마스크를 쓰거나 팔로 코와 입을 막은 채 1차 대피장소로 이동했다.

20일 전주시 덕진구 팔복LH아파트 및 더 메이호텔에서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전북소방본부, LH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유관기관합동 전기차 화재 대응 제4차 READY Korea 훈련에서 현장응급의료소 의료진이 부상자를 이송하고 있다. 2024,11,20/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의식을 잃은 환자는 들것에 누워 자위 소방대로부터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이날 자위 소방대의 신고를 접수한 119 종합상황실은 상황 전파 메신저로 덕진소방서, 전주시, 전북경찰청 등 관계 기관에 화재 상황을 전파했다.

'120명 피해'에 행안부 중대본 가동…EV 드릴랜스 등 활용해 55분에 완진

20일 전주시 덕진구 팔복LH아파트 및 더 메이호텔에서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전북소방본부, LH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유관기관합동 전기차 화재 대응 제4차 READY Korea 훈련에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이오숙 전북소방본부장이 사고현황 및 대응방안 등을 설명듣고 있다. 2024,11,20/뉴스1 ⓒ News1 김기남 기자

덕진소방서의 소방차는 화재 발생 10분 만인 오후 12시 40분에 현장에 도착해 차량 화재 1차 진압과 구조에 나섰다.

아파트 주민이 완강기와 경량 칸막이를 활용해 자력 대피할 수 있도록 돕고 전기차 화재진압을 위한 EV 드릴랜스(관통형 배터리 직접 주수장치) 등 특수장비를 동원했다.

행정안전부는 즉각 상황 판단 회의를 개최해 관계 기관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이상민 장관은 최초 상황보고를 받은 즉시 소방청에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해 신속히 화재 진압할 것을 지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가동해 범정부 총력 대응체계로 전환했다.

이 장관은 화재 발생 25분 만인 오후 12시 55분에 현장에 도착해 현장 지휘 차량에서 원격으로 중대본 회의를 열고 신속한 대응을 지시했다. 이에 소방 당국은 대응 단계를 2단계로 격상하고 가용 자원 투입을 지시했다.

'이동식 침수조'에 전기차를 넣어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 2024. 11. 20. 오현주 기자

이날 화재 차량은 1차 화재 진압을 거쳐 오후 12시 55분쯤 지상으로 견인됐다. 소방대원들은 먼저 물이 가득 담긴 이동식 침수조로 배터리의 열폭주를 안정화 했다.

전기차 화재 진압에 가장 효과가 높은 '이동식 침수조'는 불이 난 차 주변에 틀을 울타리처럼 둘러쳐 수조를 만들고 그 안에 물을 채워 화재를 진압하는 장비다.

무인파괴 방수차를 활용해 전기차 배터리 화재를 진압하는 모습. 2024. 11.20. 오현주 기자

이어 무인 파괴 방수차를 활용해 화재를 추가 진압했다. 방수차는 차량에 부착된 파괴기를 사용해 자동차를 부수고, 노즐을 차량 내부에 넣어 다량의 물과 소화약제로 불을 껐다.

소방 당국은 관통형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인 'EV 드릴랜스'도 활용해 눈길을 끌었다. 이 장비는 배터리가 들어간 전기차 하부에 구멍을 뚫고 배터리에 직접 물을 공급해 화재를 진압하는 도구다.

오후 1시10분쯤 아파트·인근 호텔 내 고립자는 고가 사다리차와 굴절 사다리차로, 호텔 옥상 대피자는 헬기로 구조했다.

앞서 전주시는 이날 오후 12시 32분 지역재난안전대책본부를 가동해 긴급 재난문자를 전파했다. 비상 문자를 본 더메이호텔은 자위 소방대를 가동해 호텔 투숙객 20여 명을 옥상으로 대피시켰다.

관통형 전기차 화재 진압 장비인 'EV 드릴랜스'로 불을 끄는 모습. 2024. 11.20. 오현주 기자

전기차 화재는 발생 55분 만인 오후 1시 25분에 완전히 꺼졌다. 훈련은 오후 1시 40분쯤 끝났다. 이번 훈련에는 총 48개 기관·단체에서 580여 명이 참여했고, 62대의 장비가 동원됐다.

현장에서 대응을 총괄한 이 장관은 "최근 전기차 화재로 인해 국민께서 불안하지 않도록, 이번 레디 코리아 훈련을 통해 전기차 화재에 대한 정부 대응체계를 꼼꼼히 살폈다"며 "앞으로도 실전형 합동훈련인 레디 코리아 훈련을 통해 대형·복합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woobi12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