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한때 금강산 가는 길목이" 대북전단에 '초긴장' 동해안 최북단

"살포 계획 철회하라" 곳곳 현수막…"전방해역 막힐까" 우려
"납북자 문제 발 벗고 나섰는데" 섭섭함 토로…주민 비대위 구성

납북자가족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예고로 인해 위험구역으로 설정된 강원 고성군 현내면 금강산콘도 앞 도로에 전단 살포 계획 철회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다. 2024.11.21/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강원 고성=뉴스1) 윤왕근 기자 = "북방한계선(NLL)에서 불과 1㎞ 떨어진 곳에 우리 어민들이 있습니다."

한 때 '평화의 길목'으로 불렸던 강원 동해안 최북단 마을에 긴장감이 돌고 있다. 북한이 포격 도발을 할 때도, 탄도미사일을 발사했을 당시에도 익숙한 듯 무심히 생계를 이어가던 이곳 주민들이 최근 "주민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플래카드를 곳곳 내걸며 불안에 떨고 있다.

납북자가족 단체가 이달 중 가족의 '생사 확인' 목적으로 고성 일대 육·해상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단 계획을 밝히면서부터다.

지난 21일 오후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이 마을은 분단국가인 대한민국 동해안에서 민간인이 닿을 수 있는 최북단 마을이다.

약 70가구 300여 명밖에 살지 않는 민통선 인근 작은 마을이지만, 한때는 금강산으로 가는 버스들이 줄을 서던 곳이다. 그러나 이날 현재 이곳은 '평화의 길목'이 아닌 '대북전단 살포지역 위험구역'으로 설정돼 있었다.

이날 현내면 고성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는 위험구역 설정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금강산콘도와 대진항 등 현내면 곳곳 '전쟁위기 조장하는 대북전단 살포 중단하라' '주민 생명 위협하는 대북전단 살포 중단하라' 등의 내용을 담아 내건 현수막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납북자가족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예고로 인해 위험구역으로 설정된 강원 고성군 현내면 통일전망대 출입신고소에 21일 위험구역 설정을 알리는 현수막이 게첨돼 있다. 2024.11.21/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대진항에서 만난 A 씨는 "지금 한창 도루묵, 양미리철인데 수온 때문에 씨가 말라 조업 시작과 함께 배 시동을 꺼야 할 판"이라며 "결국 생계유지 수단은 대문어 같은 어종인데, 이는 전방 해역에 나가야만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A 씨는 "대북전단을 날리면 북쪽에서 보복 행위를 할 것이고, 그러면 전방해역이 막혀 생계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북한이 지난달 동해선과 경의선의 남북 연결도로를 폭파하며 도발징후를 보이자 우리 당국이 최북단 어장인 저도어장을 임시 폐쇄하기도 했다.

저도어장은 문어를 비롯해 해삼, 홍합 해조류, 게류 등 어업인이 선호하는 다양한 어종이 잡혀 '황금어장'으로 불리지만 NLL에서 불과 약 1.8㎞ 떨어져 항상 위험을 수반하며 조업을 해야 하는 곳이다.

이들은 대북전단을 살포하겠다고 예고한 납북자가족 단체엔 '적대감'보다 '섭섭함'이 강하다고 했다. 납북자 문제는 고성주민들에게도 '트라우마'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김홍길 전국 이통장연합회 고성군지회장은 "고성 거진에는 납북어선 피해를 입은 가족들이 많아 납북자 문제는 우리에게도 아픈 손가락"이라며 "납북어선 피해단체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도 이장들이 발벗고 나서 사례를 발굴하고 연결해 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납북자 가족들이 많은 곳에 와서 도리어 그 후손들에게 피해를 주겠다는 것 아니냐"며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것 같아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납북자가족모임이 고성에서 대북전단을 살포한 것은 이 지역 주민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지난달 파주에서 막히니 여기 와서 하겠다는 것인데, 고성사람들을 만만하게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다가 전단 살포 기미가 보이면 지역 단체가 연합해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도 했다.

실제 현내면 번영회 등 지역 단체는 지난 21일 '대북 전단 살포 방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려 지역 안전과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이들은 납북자가족모임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대북 전단 살포를 위한 집회신고(11월 19일~12월 18일)를 한 데 따라, 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실질적인 행동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비대위 관계자는 "향후 상황 전개에 따라 신속히 자체 대응할 수 있는 비상 연락 체계를 구성해 살포행위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납북자가족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예고로 인해 위험구역으로 설정된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파리 일대 도로가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2024.11.21/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한편 지난 19일 대북전단 살포 절차 논의를 위해 속초해양경찰서를 방문한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와 박상학 자유북한연합 대표는 "이달 중 고성 통일전망대 인근 육상과 일대 해상에서 전단을 살포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들은 해경의 불허 방침과 어업인 반발에 따라, 당초 예고했던 '어선'이 아닌 '상선' 등 다른 선박을 타고 해상에 나가 전단을 살포하겠단 계획이다.

이에 속초해경 측은 관련법을 검토한 결과 "어선을 이용한 대북전단 해상 살포는 어선법에 위반된다"고 이들에게 통보했다.

해당 단체가 대북전단 살포 강행 의사를 밝히자 고성군은 20일부터 거진읍, 현내면 전역을 '위험구역'으로 설정했다.

설정 이유에 대해 군은 "위험 구역 내 대북전단 살포 관련 행위 금지를 통한 군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 및 재난 예방 차원"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에는 대북전단 살포 관계자 출입 통제, 대북전단 살포 관련 행위(물품 준비, 운반 등) 일체를 금지한다. 이를 위반하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이 처해진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와 박상학 자유북한연합 대표가 19일 속초해양경찰서에서 이달 중 강원 고성 거진항 인근 해상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예고한 가운데 취재진에게 공개한 대북전단. 2024.11.19/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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