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괜찮아, 안 죽어" 낮술 먹고 '풍덩'…폐장 해변서 위험한 물놀이
안전요원 철수한 해수욕장, 늑장 피서객 가득
동해안 역파도 심해 위험…최근 사망사고 잇따라
- 윤왕근 기자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폐장 이후에는 안전관리요원이 배치되지 않습니다.'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9월의 첫날이었던 1일 강원 강릉 사천해변은 마치 여름 성수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피서객이 가득했다.
사천해변은 지난달 18일 해수욕장 운영이 종료된 상태. 폐장 해수욕장은 안전요원이 상주하지 않아 수영 등 입수가 금지되지만 이날 '늑장 피서객'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해수욕장 폐장을 알리는 현수막이 해변 곳곳 붙어 있었지만, 피서객은 이를 따가운 햇볕을 피하는 '차양막'으로 취급할 뿐 어느 누구 하나 지키지 않았다.
일부 피서객은 아이들만 물가에 내놓고 파라솔과 텐트 아래에서 음식을 먹고 있기도 했다.
또 대부분 구명조끼와 튜브 등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한 남성 피서객은 '낮술'을 먹었는지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 물에 들어가기도 했다. 이를 본 지인들이 "들어가지 말라"고 만류하자 이 남성은 "괜찮다. 안 죽는다"며 호기를 보이기도 했다.
폐장한 해수욕장에서 안전요원이 철수해 사고 시 적절한 구조 조치를 받을 수 없어 매우 위험하다.
특히 동해안은 이른바 '역파도'라고 불리는 이안류가 심하고 수심이 '훅' 떨어져 얕은 물이라고 방심했다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지난달 28일 강릉 주문진읍 소돌해변에선 여자친구와 물놀이를 하던 20대가 파도에 휩쓸려 숨지는 사고가 있기도 했다. 소돌해변은 올여름 '비지정해변'으로 운영돼 안전요원도 배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같은 달 30일 고성 송지호 해수욕장에선 스노클링을 하던 40·50대 남성 2명이 강한 파도에 빠져나오지 못하면서 사망하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또 같은 달 25일 고성 삼포리 해변에서도 40대 남성이 물에 빠져 심정지 상태로 이송되는 사고가 있었다.
폐장 해수욕장에서 수난사고가 이어이자 해경과 지자체는 말 그대로 비상이 걸린 모양새다. '역대급 폭염'이 길어지는데다, 올해는 추석 명절이 더위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9월 중순 예정돼 '늑장 피서객'이 몰릴 우려가 크다.
이에 해경은 폐장 후 해수욕장 사고 예방을 위해 육·해상 순찰을 강화하고 지자체와 소방, 군부대, 민간 구조대 등 민·관·군과 유기적 대응을 강화하고 있다.
동해해경청 관계자는 “폭염이 길어지면서 폐장 해수욕장에서 물놀이를 즐기다 인명사고를 당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다"며 “동해안은 늦여름 너울성 파도와 이안류 등이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에 해안가 접근과 물놀이는 자제해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한편 '늑장 피서객'들이 다녀간 해변엔 술병과 폭죽, 치킨 포장박스 등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강릉시민 박 모 씨(60)는 "올해는 더위가 심해서 그런지 늦은 피서를 오는 사람이 특히 많은 것 같다"며 "온 사방이 쓰레기투성이라 보기가 안 좋고 악취가 심하다"고 말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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