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없어요" 1년 만에 다시 불꺼진 속초의료원 응급실

'훈련병 사건' 비난여론에 의사 떠나…병원 내부 뒤숭숭
타과 의사 "아무것도 모른다" 손사래…도지사 "도민께 유감"

의료진의 줄 퇴사로 7월 한달 간 응급실 단축운영이 결정된 강원 속초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정문에 8일 단축운영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4.7.8/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속초=뉴스1) 윤왕근 기자 = "의료진 공백으로 7월 한 달간 운영 일정을 조정합니다."

8일 오후 강원 설악권 유일 지역거점 공공병원인 속초의료원. 대낮보다 밝다던 응급실은 불이 꺼져 있었고, 출입문엔 응급실 축소운영을 알리는 안내문만 붙어 있었다.

응급실 수납창구를 지키는 직원도 없고, 응급실 출입문은 환자가 아닌 고된 업무 속 잠시 휴식을 취하러 나오는 의료진만 오갔다.

24시간 돌아갔던 속초의료원 응급실이 멈춘 것은 의료진의 '줄퇴사'로 이날부터 '축소 운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속초의료원에서 응급환자를 담당하던 응급의학과 소속 의사는 지난달까지만해도 5명. 그러나 지난 1일자로 2명의 의사가 병원을 떠났다. 남은 인력 3명으론 응급실 운영이 불가능하자 의료원은 이날부터 7월 한 달간 응급실을 제한적으로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이날부터 10일까지, 14일, 22~24일 총 7일간 응급실은 운영되지 않는다.

이번에 퇴사한 의료진 2명의 퇴사 이유는 '개인사유'와 '건강악화’. 그러나 퇴사한 의사 2명 중 1명이 최근 육군 12사단에서 얼차려를 받다 숨진 훈련병을 응급처치한 의사로 확인되면서 논란이 커진 상황이다.

지난 1일 병원을 퇴사한 응급의학과 소속 의사 A 씨는 지난 5월 23일 육군 12사단에서 군기훈련을 받다 쓰러져 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 훈련병의 진료를 맡았다. A 씨는 훈련병의 피검사와 CT 검사를 한 뒤 훈련병의 병명을 횡문근흉해증으로 진단했다.

응급처치를 진행한 A 씨는 훈련병이 더 큰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판단, 강릉아산병원으로 이송했다. 훈련병은 이틀 뒤인 25일 강릉아산병원에서 치료받다 숨졌다.

이 사건 이후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A 씨는 비난여론에 괴로워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진의 줄 퇴사로 7월 한달 간 응급실 단축운영이 결정된 강원 속초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주차장에 8일 의료원 소속 구급차가 주차돼 있다. 2024.7.8/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이 같은 논란에 병원 내부에서도 뒤숭숭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날 병원에서 만난 의료진에게 원내 분위기를 묻자 모두 "아무것도 모른다" "알면서 물으시냐"며 손사래를 치며 발길을 재촉했다.

실제 이 사건 직후 해당 병원 응급실 의료진은 외부의 비난여론에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A 씨와 함께 근무하다 함께 사직서를 낸 의사 B 씨는 사건 직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련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당시 B 씨는"(경찰이) 속초의료원 와서 조사하고, CCTV까지 따갔는데, 정작 가해자는 조사 1번이 없다"며 "다 의사 때문이냐, 군 장교는 잘못 없다는 건가"라고 적기도 했다.

특히 의료진은 훈련병이 숨진 이유로 의료원 내 신장투석기가 없어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 결정적 원인인 것처럼 알려지는데 대해 분노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의료원의 한 의료진은 사고 직후 SNS에 "멀쩡한 젊은이를 군대에서 죽여놓고, 이걸 병원 탓 하면서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하느냐"며 "강원도 전 소대마다 군기훈련하는 곳엔 의무적으로 CRRT(인공신장기) 두고 굴려야 한다고 해야지. 그러면 골든타임 해결했을 텐데"라고 적기도 했다.

이처럼 또다시 응급실 의료진 공백이 발생하면서 의료원과 강원도는 비상이 걸린 상황. 특히 해당 사건과 관계없이 의료원은 올 1월부터 의료진 채용을 위한 공고를 10차례 진행했으나 충원에 거듭 실패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해당 의료원 응급실 운영이 1년 만에 다시 파행, 악화일로를 걷게 되자 도지사가 유감을 표하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8일 강원도청 강릉 제2청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속초의료원 응급실 의료공백으로 도민들께 걱정을 안겨드려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의료인력을 신속히 보강해 대응해 나가려고 한다"며 "이 기간 생긴 공백은 어쩔 수 없이 원주나 강릉 등 긴급이송체계를 마련해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강원도는 최근 해당 의료원 응급실 운영 정상화를 위한 대책회의를 열고 119 이송 시 경증과 비응급환자는 지역응급의료기관이나 지역 병의원에서 적극 수용해 줄 것을 설득하기로 했다.

또 강릉아산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긴급이송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협력체계를 강화하기로 했다.

속초의료원은 내부 의료진과의 협력을 통해 응급실 미운영 시간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경희 도 복지보건국장은 "속초의료원 홈페이지와 병원에 축소운영 안내를 게시하고 전화안내 등 홍보를 강화해 주민 이용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며 "중증환자 발생 시 강릉아산병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긴급 이송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협력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의료진의 줄 퇴사로 7월 한달 간 응급실 단축운영이 결정된 강원 속초의료원 응급의료센터 정문에 8일 단축운영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4.7.8/뉴스1 ⓒ News1 윤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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