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 숨진 '시청역 역주행'은 급발진?…국내 인정사례는?
현행법 "급발진 입증, 소비자가" 강릉 의심사고로 공분
'도현이법' 21대서 폐기…"국가폭력" 외친 아버지 재청원하기도
- 윤왕근 기자
(서울·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지난 1일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지는 사고를 낸 차량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급발진 인정 사례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결론부터 보면 국내에서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으로 인한 교통사고는 '0건'이다.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가 전무하다는 이야기다.
특히 현행법은 급발진 의심사고가 발생하면 소비자, 즉 운전자에게 그 입증 책임을 두고 있어, 급발진 인정이 더욱 어렵다. 이는 국내 대표적 '급발진 의심사고'로 현재까지 민사소송이 이어지고 있는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사고는 2022년 12월 6일 오후 3시 56분쯤 강릉시 홍제동 한 도로에서 60대 A 씨가 몰던 '티볼리 에어' 차량이 배수로로 추락하면서 시작됐다. 이 사고로 동승자 이도현 군(당시 12세)이 숨지고, 운전자이자 도현군의 친할머니인 A 씨가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다.
이를 두고 운전자이자 유족 측은 해당 사고가 '급발진'으로 일어난 것이라며 제조사를 상대로 7억 6000만 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해 현재 진행 중이다.
해당 사고는 급발진 진위와 관계없이 그 입증 책임을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가 해야하는 현행법에 대한 공분으로 이어졌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은 자동차 급발진 의심사고 발생 시 그 입증책임을 차량을 만든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가 하도록 돼 있다. 첨단기술이 집약된 수만 개의 부품으로 이뤄진 자동차의 오작동과 결함을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입증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 도현군 가족은 현행법에 따라 '급발진 여부'를 밝히기 위해 지난 4월 실시된 국내 첫 급발진 재연시험에 차량과 제반 사항들을 모두 부담해야 했다. 유족은 그동안 몇 차례 이어진 감정에만 수천만 원을 쓴 상황이었다.
이에 도현 군 아버지 이상훈 씨는 사고 이후 국민청원을 통해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원인 입증책임 전환 청원' 이른바 '도현이법' 제정을 촉구해 국민적 공감대를 불렀다.
이는 '도현이법' 제정 분위기로 이어져 정치권도 반응했다. 실제 지난 21대 국회는 해당 청원에 5만 명이 동의, 청원 요건을 충족하자 허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가 합심해 도현이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산업계 영향을 우려해 신중한 자세를 취했고, 이후 여야 정쟁이 이어지면서 21대 내내 국회를 떠돌다 결국 지난달 폐기됐다.
이에 도현 군 아버지 이 씨는 22대 국회 개원에 맞춰 최근 재청원을 올렸고, 5만 명의 동의를 다시 얻어냈다.
이 씨는 청원에 "급발진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국가폭력"이라고 적었다.
이 씨는 "현행 제조물책임법은 급발진 의심사고 시 사실상 불가능한 소프트웨어 결함에 대한 입증책임을 사고 당사자나 유가족이 해야 되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하게 돼 있다"며 "현행법을 자동차 제조사에서 결함이 없음을 증명하도록 하는 입증책임 전환에 대한 법 개정이 올해 안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지난 3월 EU에서도 소비자인 원고가 기술적 또는 과학적 복잡성으로 인해 제품의 결함과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것이 과도하게 어려운 경우 결함과 인과관계를 추정해서 입증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넘기는 조항을 신설했다"고 부연했다.
이 씨는 "예외없이 운전자 과실로 결론 내는 국과수를 상대로 비전문가이자 경제적 약자인 사고자나 유족이 급발진 원인 규명을 위해 많은 비용이 드는 기술적 감정을 실시해서 증명해야 하는 것은 국가폭력"이라고 말했다.
한편 경찰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1일 오후 9시 27분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호텔에서 빠져나온 제네시스 차량이 건너편 일방통행 4차선 도로인 세종대로18길을 역주행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고로 9명이 사망했고 6명은 현장에서, 3명은 병원 이송 도중 숨졌다.
경찰은 이 같은 '급발진 주장'을 두고 "현재까지는 피해자 진술일 뿐"이라며 "현장 조사를 나간 경찰에게 직접 말하거나 공식 전달한 건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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