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때 죽일 듯 노려봤다"…'직장 괴롭힘' 극단선택 청년 유족 분통

전영진 씨 사망사건 항소심 첫 공판…"처 맞을 각오해" 상습 폭언·폭행
A 씨 측 "채무 영향 미쳤을 것" 사실 조회 신청…유족 "사과 한마디 없어"

고(故) 전영진 씨 생전 모습.(유족 제공) 2024.5.29/뉴스1

(강릉=뉴스1) 윤왕근 기자 = "흔한 가식적인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했다."

첫 직장에서 상사의 도를 넘는 괴롭힘에 시달리다 지난해 스물 다섯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故) 전영진 씨의 아버지가 재판장에서 한 말이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형사1부(권상표 부장판사)는 30일 협박, 폭행,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항소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 A 씨 측은 "전 씨가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가 반드시 A 씨에게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변호를 했다.

A 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큰 잘못을 했지만, 피해자는 예전에도 실종신고가 된 적 있고, 극단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다"며 "(전씨가 진)채무 독촉 등이 (극단 선택에)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A 씨 측은 "경찰에 (전 씨의)예전 실종신고 기록과 채무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금융거래 조회가 필요하다"며 재판부에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이 같은 주장에 숨진 전 씨의 어머니는 "자살시도는 한 적 없고, 가출한 것으로 생각해 실종신고를 한 적 있다. 그것도 이미 2016~17년도쯤 이야기"라며 "채무 역시 아들이 예전 화물차 지입 일을 하려다 진 것으로, 아버지가 대부분 갚아줬고, 일하면서 일부를 갚고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숨진 전 씨의 형 역시 "2022년 3월쯤 동생에게 급여가 100만 원 밖에 안들어 온 적이 있었다"며 "이에 생활비 명목으로 대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재판부는 "실종신고가 있었던 것이 2016~17년쯤이라면 이 사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A 씨 측을 꾸짖듯 말했다. 다만 재판부는 금융거래 조회 신청은 받아들이지 않고 실종 건에 대한 사실 조회 신청서 제출만 허락했다.

고(故) 전영진 씨 생전 모습.(유족 제공) 2024.5.29/뉴스1

이날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은 전 씨의 형은 "1심 때 형량이 선고되자 (A 씨가)저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며 "만약 사회에 나온다면 해를 가할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전 씨의 아버지도 "A 씨로부터 가식적인 사과 한마디 받아보지 못했다"며 "이를 꼭 참작 해달라"고 말했다.

속초지역 자동차 부품업체에 근무하던 A 씨는 지난해 3월 초 사무실 앞마당에서 직장 후배인 고(故) 전영진 씨(25)가 평소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화를 내며 주먹으로 머리를 때리는 등 같은 해 5월까지 4차례에 걸쳐 B 씨를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또 비슷한 시기 86회에 걸친 폭언과, 협박 16회를 범한 혐의도 공소장에 적혔다.

지난 4월 춘천지법 속초지원에서 열린 1심에서 재판부는 “CCTV 영상에 나타난 피해자의 모습은 피고인 앞에서 매우 위축돼 고개마저 제대로 들지 못했다. 사랑하는 막내아들이자 동생인 피해자를 잃은 피해자의 유족들 역시 커다란 슬픔과 비통함에 빠져있다”며 “피고인에 대해서는 그 책임과 비난 가능성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또 이 사건이 ‘직장 내 괴롭힘’ 내지 ‘직장 내 갑질’의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럼에도 A 씨는 형량이 너무 높다며 항소했다.

86차례의 폭언, 16번의 협박, 4차례 폭행. 그러나 이는 통화녹음이나 폐쇄회로(CC)TV를 토대로 직접 잡힌 증거의 일부일 뿐, 영진 씨가 직장생활을 했던 2년여간 수많은 폭행과 폭언, 협박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숨진 영진 씨 휴대전화에 담긴 A 씨와의 대화 700여건에는 폭행이 지속돼 왔음을 암시하는 대화가 다수 남아 있었다.

지난해 3월 29일 이뤄진 영진 씨와 A 씨의 통화에서 A 씨는 "야이 씹X끼야. 요새 안 처맞으니 재밌지? 내일 아침부터 맞아보자. 내일 아침 죽을 각오하고 나와"라고 윽박질렀다.

이밖에도 "내일 아침에 오자마자 빠따 12대야"(2023년 4월 19일), "이 개X끼가 뒤지려고, 안 맞으니 풀어져서 또 맞고싶지? 오늘 한번 보자."(2023년 5월 3일), "안 맞으면 제대로 안하지. 안 맞고 보름을 못가지."(2023년 5월 8일), "맨날 처맞고 이렇게 살래? 나한테 처맞고 며칠 지나면 원상복구 되고."(2023년 5월 10일), "죽여벌라. 또 처맞고 싶지."(2023년 5월 13일) 등 영진 씨를 겁박하는 A 씨의 목소리가 남아있었다.

고(故) 전영진 씨 생전 모습.(유족 제공) 2024.5.29/뉴스1

부모님도 언급했다.

같은 해 5월 19일 이뤄진 대화에서 A 씨는 영진 씨에게 "대단한 집구석이다 진짜. 눈 돌아가면 너네 애미애비고 다 죽일거야"라고 말했다.

또 같은 해 3월 29일 대화에서 A 씨는 "너네 집 X나 잘 살아? 너네 엄마 뭐해. 너네 아버지 뭐해. 집에 돈 버는 사람 누가 있어"라며 "니가 그러는데 어떤 골빈X이 널 만나겠니"라고 모욕하기도 했다.

영진 씨 형 영호 씨는 "동생은 평소 사려가 깊고 밖에서 겪은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성격이다. 처음 통화녹음을 듣고 동생이 겪었을 상황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밀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생이 2년 동안 겪은 끔찍했던 상황에 비하면 1심 형량은 너무 낮다. 더 이상 동생과 같은 일을 누군가 당하지 않게 그 기준이 되는 판결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wgjh6548@news1.kr